[여기는 논설실] 김현미의 공공임대주택, 꿈일까 악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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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까지 전체 임대가구의 25%를 공공임대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4일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브리핑에서 밝힌 말입니다. 김 장관은 민간 전월세 시장에 의존해온 645만 가구를 '전세 난민'으로 규정한 뒤 이들을 위해 현재 약 160만호인 공공임대주택을 2022년 200만호, 2025년 240만호까지 확대하겠다는 로드맵을 밝혔습니다. 내 집 마련은 한국인의 가장 큰 꿈이자 고민꺼리 중 하나입니다.
그런 주택을 국가와 시가 주택을 해결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꿈의 현실화를 추진해온 도시가 미국에 있습니다. 도시 인구의 5%인 40만 명이 시 소유의 공공임대주택에 살고 있으며, 또 23만5000명은 시가 지원하는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바로 뉴욕시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친 프레드 트럼프도 이런 종류의 임대주택을 지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뉴욕시는 지난 1934년 대공황 와중에 뉴욕시주택공사(New York City Housing Authority(NYCHA)를 설립했습니다. 많은 뉴요커들이 경제적 곤란으로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자 진보적이던 피오넬로 라과디아 당시 시장이 공공임대주택 개발에 돌입한 게 그 시작입니다. 1935년 완공된 첫 번째 공공임대주택은 맨해튼의 로워이스트사이드에 지어졌습니다. 현재 NYCHA는 뉴욕시 내에서 325개 단지, 56만 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꿈과 조금 다릅니다. 지난 2010년부터 뉴욕시의 공공감찰관실은 ‘최악의 집주인’ 명단을 선정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집주인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세입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2018~2019년 2년 연속으로 최악의 집주인 1위로 꼽힌 곳이 바로 NYCHA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NYCHA가 관리하는 공공임대주택에서 제기된 고장을 고쳐달라는 민원이 지난해 12월부로 34만2840개에 달하고 있습니다. 거의 한 집에 0.7개 꼴로 민원이 밀려있는 셈입니다. 그 것도 지난 1년간 10만여 개, 43%가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 고장 민원을 다 해결하는데 드는 예산은 무려 452억329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민원의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쥐와 바퀴벌레 떼 출현 △납이 포함된 페인트로 인한 납중독 △보일러 고장으로 인한 온수와 난방 공급 중단 △비상구 고장 등입니다. 특히 납페인트로 인한 어린이들의 납중독 문제는 심각합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문제가 된 뒤 조사를 통해 1만1000여명이 납에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보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고치지 않고 보수했다고 보고했다가 적발돼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뉴욕시를 덮쳤던 지난 3월에는 NYCHA의 공공주택에서 사망자 시신이 줄줄이 실려 나오는 사진이 뉴욕 언론을 도배했습니다.NYCHA가 엉망이 된 원인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도저히 임대료로는 보수나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NYCHA측은 뉴욕시 평균 임대료를 산출한 뒤 그 80%를 임대료로 받고 있습니다. 또 월세는 가구별 소득에 따라 달리 책정됩니다. NYCHA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뉴욕시 방 하나짜리 아파트의 평균 임대료는 1714달러이고, NYCHA의 임대료는 80%인 1371달러입니다. 하지만 NYCHA가 방 하나짜리 임대주택에서 실제로 받는 임대료는 월 522달러에 불과합니다. 임대료를 가구별 소득의 30% 이상은 받지 못하게 한 규정에 따라 임대료를 깎아주는데,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이들의 평균 소득이 가구당 연 2만 달러대로 매우 낮은 탓입니다. 게다가 NYCHA는 월세를 내지 않아도 쫓아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시설은 낡아가는 데 고칠 예산은 없습니다. 뉴욕시도 무작정 보수관리에 엄청난 돈을 투입할 수만은 없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그새 NYCHA의 관리 인력만 무려 1만700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임금 등 고정비만 한 해 수십억달러에 달합니다.
결국 '꿈' 속의 공공임대주택은 뉴욕에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겁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8.4 주택공급대책을 통해 청년, 신혼부부 등 주택 수요층에게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대책 발표 이후 여당 소속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들까지 반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이 일종의 혐오시설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실제 공공임대주택은 민간 주택에 비해 자재 등 주택의 품질이 떨어집니다. 조경이나 문화시설 등 주거 환경도 그렇습니다. LH의 임대주택인 휴먼시아에 사는 사람을‘휴거’(휴먼시아 거지)나‘엘사’(LH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의 준말)라는 조롱해 부르는 말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휩쓰는 건 행동경제학자들입니다.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인 2019년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인간은 많은 잘못된 관념과 선입견 등에 기반하고 있다고 가정해 경제 현상을 연구합니다. 전통경제학자들이 전제로 했던 모두가 합리적이고, 최상의 결정을 한다는 게 틀렸다고 가정합니다. 실제 인간의 뇌는 제한적이며, 행동은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꿈과 현실은 다릅니다. 그래서 시장이 있는 것입니다. 경쟁적인 시장은 참여자가 계속 비합리적인 결정을 한다면 더 이상 자원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듭니다. 결국 합리적 사고를 하는 참여자들이 남아 더 많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게 됩니다. 정부가 이런 시장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꿈은 현실 속에서 악몽이 될 수 있습니다.
김현석 논설위원 realist@hankyung.com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4일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브리핑에서 밝힌 말입니다. 김 장관은 민간 전월세 시장에 의존해온 645만 가구를 '전세 난민'으로 규정한 뒤 이들을 위해 현재 약 160만호인 공공임대주택을 2022년 200만호, 2025년 240만호까지 확대하겠다는 로드맵을 밝혔습니다. 내 집 마련은 한국인의 가장 큰 꿈이자 고민꺼리 중 하나입니다.
그런 주택을 국가와 시가 주택을 해결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꿈의 현실화를 추진해온 도시가 미국에 있습니다. 도시 인구의 5%인 40만 명이 시 소유의 공공임대주택에 살고 있으며, 또 23만5000명은 시가 지원하는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바로 뉴욕시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친 프레드 트럼프도 이런 종류의 임대주택을 지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뉴욕시는 지난 1934년 대공황 와중에 뉴욕시주택공사(New York City Housing Authority(NYCHA)를 설립했습니다. 많은 뉴요커들이 경제적 곤란으로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자 진보적이던 피오넬로 라과디아 당시 시장이 공공임대주택 개발에 돌입한 게 그 시작입니다. 1935년 완공된 첫 번째 공공임대주택은 맨해튼의 로워이스트사이드에 지어졌습니다. 현재 NYCHA는 뉴욕시 내에서 325개 단지, 56만 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꿈과 조금 다릅니다. 지난 2010년부터 뉴욕시의 공공감찰관실은 ‘최악의 집주인’ 명단을 선정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집주인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세입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2018~2019년 2년 연속으로 최악의 집주인 1위로 꼽힌 곳이 바로 NYCHA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NYCHA가 관리하는 공공임대주택에서 제기된 고장을 고쳐달라는 민원이 지난해 12월부로 34만2840개에 달하고 있습니다. 거의 한 집에 0.7개 꼴로 민원이 밀려있는 셈입니다. 그 것도 지난 1년간 10만여 개, 43%가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 고장 민원을 다 해결하는데 드는 예산은 무려 452억329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민원의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쥐와 바퀴벌레 떼 출현 △납이 포함된 페인트로 인한 납중독 △보일러 고장으로 인한 온수와 난방 공급 중단 △비상구 고장 등입니다. 특히 납페인트로 인한 어린이들의 납중독 문제는 심각합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문제가 된 뒤 조사를 통해 1만1000여명이 납에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보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고치지 않고 보수했다고 보고했다가 적발돼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뉴욕시를 덮쳤던 지난 3월에는 NYCHA의 공공주택에서 사망자 시신이 줄줄이 실려 나오는 사진이 뉴욕 언론을 도배했습니다.NYCHA가 엉망이 된 원인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도저히 임대료로는 보수나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NYCHA측은 뉴욕시 평균 임대료를 산출한 뒤 그 80%를 임대료로 받고 있습니다. 또 월세는 가구별 소득에 따라 달리 책정됩니다. NYCHA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뉴욕시 방 하나짜리 아파트의 평균 임대료는 1714달러이고, NYCHA의 임대료는 80%인 1371달러입니다. 하지만 NYCHA가 방 하나짜리 임대주택에서 실제로 받는 임대료는 월 522달러에 불과합니다. 임대료를 가구별 소득의 30% 이상은 받지 못하게 한 규정에 따라 임대료를 깎아주는데,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이들의 평균 소득이 가구당 연 2만 달러대로 매우 낮은 탓입니다. 게다가 NYCHA는 월세를 내지 않아도 쫓아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시설은 낡아가는 데 고칠 예산은 없습니다. 뉴욕시도 무작정 보수관리에 엄청난 돈을 투입할 수만은 없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그새 NYCHA의 관리 인력만 무려 1만700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임금 등 고정비만 한 해 수십억달러에 달합니다.
결국 '꿈' 속의 공공임대주택은 뉴욕에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겁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8.4 주택공급대책을 통해 청년, 신혼부부 등 주택 수요층에게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대책 발표 이후 여당 소속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들까지 반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이 일종의 혐오시설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실제 공공임대주택은 민간 주택에 비해 자재 등 주택의 품질이 떨어집니다. 조경이나 문화시설 등 주거 환경도 그렇습니다. LH의 임대주택인 휴먼시아에 사는 사람을‘휴거’(휴먼시아 거지)나‘엘사’(LH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의 준말)라는 조롱해 부르는 말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휩쓰는 건 행동경제학자들입니다.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인 2019년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인간은 많은 잘못된 관념과 선입견 등에 기반하고 있다고 가정해 경제 현상을 연구합니다. 전통경제학자들이 전제로 했던 모두가 합리적이고, 최상의 결정을 한다는 게 틀렸다고 가정합니다. 실제 인간의 뇌는 제한적이며, 행동은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꿈과 현실은 다릅니다. 그래서 시장이 있는 것입니다. 경쟁적인 시장은 참여자가 계속 비합리적인 결정을 한다면 더 이상 자원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듭니다. 결국 합리적 사고를 하는 참여자들이 남아 더 많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게 됩니다. 정부가 이런 시장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꿈은 현실 속에서 악몽이 될 수 있습니다.
김현석 논설위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