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이노텍 50년…'혁신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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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이노텍은 국내 최초의 전자부품 기업이다. 1970년 일본 알프스전기와 합작사로 설립돼 올해로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50년간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계속 바뀌었다. 시장의 트렌드가 수시로 바뀌는 전자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신을 꾀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LG이노텍의 반세기를 정리했다.
금성알프스전자가 초창기에 만든 제품은 튜너, 카세트·VCR용 헤드 등이었으며 대부분 수출됐다. 금성알프스전자가 등장하면서 국내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의 경쟁력도 높아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럭키금성은 그룹명을 LG그룹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금성알프스전자는 ‘LG전자부품’으로 사명을 교체했다.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LG전자부품은 LG정밀에 합병됐다. LG정밀은 2000년 5월 사명을 LG이노텍으로 변경했다.
후발주자였던 LG이노텍이 카메라모듈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005년부터다. 그해 7월 6.4㎜ 두께의 200만 화소 AF 카메라모듈을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LG전자 샤인폰 등에 LG이노텍의 초박형 카메라모듈이 탑재되면서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이후에도 LG이노텍은 초박형 카메라모듈로 승부를 걸었다. 2007년엔 4.35㎜ 초슬림 200만 화소 고정초점 카메라모듈과 5.0㎜ 초슬림 200만 화소 자동 초점 카메라모듈 등을 내놓았다. 두 제품 모두 출시 시점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모델이었다.
LG이노텍은 2006년 글로벌 튜너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랐다.
LG이노텍이 유가증권시장에 데뷔한 날짜는 7월 24일이다. 시초가는 공모가보다 약 6% 상승한 4만3000원이었다. LG이노텍은 상장 과정에서 신주 340만 주를 발행해 600억원의 자본금과 1조원의 자산 규모를 갖추게 됐다. 회사 상장으로 직원들의 지갑도 두둑해졌다. 우리사주를 갖게 된 LG이노텍 임직원들은 1년이 지나 주식을 팔 수 있게 됐는데 그 사이 주가가 공모가(4만300원)보다 세 배 넘게 올라 상당한 이익 실현을 할 수 있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1970년 대한민국 최초 전자부품기업
LG전자(당시 금성사)는 1960년대부터 부품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전자제품의 품질을 높이려면 부품 기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본 것이다. 부족한 기술은 제휴를 통해 메웠다. 일본 최대 전자부품사인 알프스전기와 손잡고 부품업체를 세우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전자부품 업체가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은 1970년 8월 22일이다. 사명은 금성알프스전자주식회사. 본사는 부산시 동래구에 마련했다.금성알프스전자가 초창기에 만든 제품은 튜너, 카세트·VCR용 헤드 등이었으며 대부분 수출됐다. 금성알프스전자가 등장하면서 국내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의 경쟁력도 높아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럭키금성은 그룹명을 LG그룹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금성알프스전자는 ‘LG전자부품’으로 사명을 교체했다.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LG전자부품은 LG정밀에 합병됐다. LG정밀은 2000년 5월 사명을 LG이노텍으로 변경했다.
2005년 200만 화소 카메라모듈 개발
2000년대 들어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이 대세가 됐다. 이에 발맞춰 LG이노텍도 2003년 휴대폰 카메라모듈 시장에 뛰어들었다. 카메라모듈은 피사체를 휴대폰 화면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부품으로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한다.후발주자였던 LG이노텍이 카메라모듈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005년부터다. 그해 7월 6.4㎜ 두께의 200만 화소 AF 카메라모듈을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LG전자 샤인폰 등에 LG이노텍의 초박형 카메라모듈이 탑재되면서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이후에도 LG이노텍은 초박형 카메라모듈로 승부를 걸었다. 2007년엔 4.35㎜ 초슬림 200만 화소 고정초점 카메라모듈과 5.0㎜ 초슬림 200만 화소 자동 초점 카메라모듈 등을 내놓았다. 두 제품 모두 출시 시점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모델이었다.
2006년 400개칩 동시에 ‘멀티마운터’ 출격
200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튜너가 내장된 고화질(HD) TV의 수요가 급증했다. 당시 디지털 튜너(사진)는 기판에 순차적으로 한 개씩 칩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생산 속도가 느렸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LG이노텍과 LG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멀티마운터를 떠올렸다. 초소형 칩을 한 번에 수백 개 설치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속도와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두 회사가 멀티마운터를 내놓은 것은 2006년이다. 이 부품의 등장으로 글로벌 튜너 시장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기판 하나에 칩 400개를 심는 작업이 8초 만에 가능해졌다. 기존 마운팅 장비와 비교해 생산성이 네 배 이상 높아진 반면 비용은 70%가량 줄었다. 가격 경쟁력은 시장점유율로 이어졌다.LG이노텍은 2006년 글로벌 튜너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008년 유가증권시장 상장
LG이노텍은 2008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추진했다. 신주 발행으로 확보한 자금을 LED, 차량용 모터, 무선통신 부품 등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기업공개(IPO) 시장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코스피지수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LG이노텍은 상장 일정을 늦추지 않았다. 자본금 확충을 통해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LG이노텍이 유가증권시장에 데뷔한 날짜는 7월 24일이다. 시초가는 공모가보다 약 6% 상승한 4만3000원이었다. LG이노텍은 상장 과정에서 신주 340만 주를 발행해 600억원의 자본금과 1조원의 자산 규모를 갖추게 됐다. 회사 상장으로 직원들의 지갑도 두둑해졌다. 우리사주를 갖게 된 LG이노텍 임직원들은 1년이 지나 주식을 팔 수 있게 됐는데 그 사이 주가가 공모가(4만300원)보다 세 배 넘게 올라 상당한 이익 실현을 할 수 있었다.
2020년 트리플 카메라 등 신기술 행진
2010년 LG이노텍은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 콘티넨탈로부터 DCT용 모터 개발을 제안받았다. DCT용 모터 개발이 완료될 무렵이었던 2012년 전 세계적으로 희토류 가격이 폭등했다. LG이노텍은 고민 끝에 희토류가 들어가지 않는 모터를 개발하겠다는 뜻을 콘티넨탈에 전달했다. 이 제품 개발에는 2년 이상이 소요됐다. LG이노텍이 2014년 내놓은 제품은 희토류가 들어가지 않음에도 길이가 17㎜에 불과했다. 희토류를 사용해 만든 경쟁사의 모터(24㎜)보다 크기가 작았다.스마트폰 카메라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는 갈수록 까다로워졌다. LG이노텍은 2018년 표준화각(77도)과 망원(30도), 흑백카메라(90도)로 구성된 트리플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새로운 카메라는 2018년 하반기 LG전자의 전략 스마트폰 V40씽큐에 적용됐다. 이 제품의 전면엔 듀얼 카메라, 후면엔 트리플 카메라가 들어간다.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