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퀸 메릴·위스키와 나

하버드-C. H. 베크 세계사: 1350~1750, 세계 제국과 대양

▲ 퀸 메릴 = 에린 칼슨 지음, 홍정아 옮김.
현존하는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메릴 스트리프의 전기다. 영리하고 재기발랄한 뉴저지주 버나즈 고등학교 여고생이 재능을 발휘해 '미의 여왕'이 된 이야기로 시작해 오디션 자리에서 "진짜 못생겼네"라는 소리를 들었던 무명 시절을 거쳐 할리우드를 장악하고 살아있는 전설이 되기까지 인생 역정을 담았다.

화려한 성공담과 함께 사람과 인생을 탐구하는 배우로서 메릴 스트리프가 고민하고 기다리고 결정했던 과정과 한 사람, 한 시민으로서, 아내로서 살아온 모습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멀리서 보면 고압적인 여왕이나 친해지기 어려운 여성 정치가 같지만, 실제로는 유머러스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메릴 스트리프의 면모를 보여주는 많은 일화가 소개된다. 40여년간 6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모욕적인 여성 혐오의 언사를 뱉어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메릴 스트리프는 그런 순간마다 뛰어난 지성과 한결같은 품위로 그들에게 신랄한 한 방을 먹이는 당당함을 보여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메릴 스트리프를 '할리우드에서 가장 과대 평가된 여배우'라고 악담한 것은 그가 지닌 배짱과 품위의 반증이기도 하다.

저자는 AP 통신 엔터테인먼트 담당 기자로 일했고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 노라 에프런의 영화를 분석한 '저 여자가 먹는 걸로 주세요'를 썼다. 현암사. 416쪽. 2만원.
▲ 위스키와 나 = 타케츠루 마사타카 지음, 김창수 옮김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타케츠루 마사타카(1894~1979)가 1968년 일본경제신문에 연재한 자전적 칼럼 '나의 이력서' 글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사케 양조장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타케츠루는 당시 일본 제일의 양조 메이커였던 셋츠주조에 취직했고 그의 성실함과 열정을 높이 산 사장의 지원으로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떠난다. 스코틀랜드에서 증류소 직원들이 기피하는 증류기 내부 청소를 자청해 맡아 증류기 내부의 모습을 메모해 둘 정도로 열성적으로 위스키 제조법을 익힌 그는 귀국 후 훗날 산토리 위스키가 되는 코토부키야로 자리를 옮겨 당시 일본 시장을 지배하던 '가짜' 위스키가 아닌 '진짜' 위스키를 만드는 일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위스키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일본에서 위스키를 자체 생산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증류소의 설계부터 설비와 기계 발주에 이르기까지 아는 사람이 자신뿐이다 보니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위스키 제조 과정과 부합하지 않는 주세법을 개정하기 위해 관료들을 설득하는 일이나 산토리 위스키에서 나와 자신이 설립한 니카 위스키의 경영을 챙기고 수익을 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난관을 뚫고 타케츠루는 '명품 위스키'를 만들어냈고 그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 산토리와 니카의 위스키가 세계 품평회에서 매년 수상하는 등 일본은 불과 100년 만에 일류 위스키 제조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옮긴이는 타케츠루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독자 위스키 제조의 꿈을 안고 일본과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한 위스키 전문가다.

워터베어프레스. 232쪽. 1만6천500원.
▲ 하버드-C. H. 베크 세계사: 1350~1750, 세계 제국과 대양 = 볼프강 라인하르트 엮음, 이진모·공원국 옮김.
유럽 중심의 역사, 각 지역의 역사 모음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는 연결의 역사를 표방하며 미국 하버드 대학 출판부와 독일 C. H. 베크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역사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근현대를 다룬 전작 두 권에 이어 이번에는 1350년 무렵부터 약 400년간의 세계사를 기술한다.

이 시기는 흔히 유럽의 팽창으로 단순화해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고립에서 벗어나 서로를 발견하고 역동적으로 반응하며 연결됨으로써 오늘날의 세계로 나아가는 시기로 평가한다.

1부 '유라시아 대륙의 제국과 미개척지들'에서는 몽골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중국, 러시아와 함께 한국, 일본, 베트남, 중앙유라시아 각국과 그들의 상호 작용을 살핀다.

2부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 이란을 중심으로 이슬람권을 다루며 3부와 4부에서는 각각 남아시아와 인도양, 동남아시아와 대양의 다채로운 사람들이 펼친 다채로운 역사를 알아본다.

5부 '유럽과 대서양 세계'는 그 이전까지 별개의 세상이었던 유럽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정복-피정복의 역사와 이로써 본격화한 세계적 교류의 양상과 의미를 규명한다.

'독일 역사가상'을 받은 볼프강 라인하르트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명예교수, '중국의 서진' 등을 지은 피터 퍼듀 미국 예일대학 교수, 오스만사의 권위자인 수라이야 파로키 터키 이븐 할둔 대학 명예교수 등이 저자로 참여했다.

시리즈는 모두 6권이며 '600 이전, 초기 문명'과 '600~1350, 농경민과 유목민의 도전', '1750~1870, 근대 세계로 가는 길'도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민음사. 1천268쪽. 5만8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