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김성현 KPGA 사상 첫 월요예선 챔피언 오르는 대기록

시즌 첫 KPGA 메이저 대회 에이원 대회 4타 차 열세 뒤집는 대 역전극 연출
2위 이재경 1타 차로 제치고 생애 첫 우승 메이저 대회로 장식하는 기쁨 누려
어린시절 전국체전 골프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2부투어 우승, 일본 2부투어 우승 경력
월요일 예선 거쳐 정규 투어 우승하는 첫 사례 남겨
향후 5년간 투어 시드, PGA투어 CJ컵 출전권까지 부상을 챙겨 기쁨 두 배
사진=연합뉴스
김성현(22)이 생애 첫 승을 메이저 대회로 장식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9일 경남 양산 에이원CC에서 끝난 올 시즌 첫 KPGA 메이저 대회 KPGA선수권을 제패했다. 김성현은 선두에 4타 뒤진 공동 8위로 최종일에 나서 승부를 뒤집는 대역전극을 연출하며 한국 남자 프로골프의 새 기대주로 떠올랐다. 정규 투어 시드가 없는 김성현은 월요예선을 거쳐 한국 남자 골프 대회 사상 최초로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김성현은 이날 열린 대회 최종일 버디 4개 보기 1개를 묶어 3언더파 68타를 쳤다. 최종합계 5언더파 275타. 챔피언조보다 먼저 대회를 끝낸 그는 연장전을 예상하며 클럽하우스에서 대기를 하다 우승소식을 접했다. 2위 이재경(21)과는 1타 차. 그는 "기분이 너무 좋다. 월요예선을 거치면서 우승까지 하게 돼 운이 좋았다. 바람이 너무 어렵게 불었는데 클럽 선택이 잘 먹힌 것 같다"고 말했다.최종일, 김성현의 우승을 점치는 이는 없었다. 관심은 챔피언조에 쏠렸다.

8년만에 생애 첫 승을 노린 박정민(27), 2018년 명출상(신인상)에 빛나는 함정우(26)가 1타 차 1, 2위로 최종일을 맞았다. 올 시즌 첫 메이저인 제63회 KPGA선수권 대회(총상금 10억원). 대회장인 경남 양산 에이원CC 서코스(파70)에는 사흘내내 비가 내렸지만 9일 열린 최종일엔 햇빛과 강한 바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방향을 바꿔가며 이리저리 부는 바람처럼 선두경쟁 구도 역시 시시각각 변했다. 챔피언조로 출발한 박정민과 함정우는 긴 러프를 전전하다 타수를 잃었다. 재미동포 한승수(34)는 퍼팅이 살짝살짝 비켜가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 틈을 추격자들이 비집고 들어와 새로운 선두그룹을 만들었다. 이날만 5타를 줄인 이재경이 4언더파로 경기를 먼저 끝내며 선두그룹으로 뛰어 올랐다. 김성현, 강경남(37) 역시 4언더파까지 치고 올라왔다. 선두 그룹이 한 때 7명까지 늘어날 정도로 빼곡했다. 안갯속 승부는 후반까지 이어졌다. 유럽투어 3승의 '어린왕자' 왕정훈(25)이 가장 먼저 치고 나왔다. 3타를 덜어내 5언더파 단독 선두로 올라선 것이다. 유럽투어에서 주로 활약해온 그는 코로나19로 올해 국내에서 투어를 뛰고 있다. 2016년 우승 두 번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떠오른 그는 2017년 커머셜뱅크 카타르 마스터스로 유럽투어 3승을 수확한 이후 이후 국내든, 해외에서든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국내 투어 첫 우승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17번홀(파3), 18번홀(파4) 티샷이 바람에 밀리며 그를 침몰시켰다. 17번홀에선 아이언 티샷이 우측으로 밀려 보기를 내줬고, 18번홀에선 우드 티샷이 왼쪽으로 감겨 물에 빠졌다. 왕정훈이 3타를 잃는 사이, 17번홀 탭인 버디를 낚은 김성현이 5언더파 단독 선두로 경기를 끝마쳤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이는 단 두 명만 남았다. 함정우와 한승수. 4언더파인 이 둘이 김성현과 연장에 들어가거나, 역전을 하려면 버디 1개 이상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도 두 개의 남은 홀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한승수의 18번홀티샷이 물에 빠졌다. 함정우의 20m버디 퍼트도 홀 근처에 멈춰섰다. 연장전 준비를 하던 김성현의 우승이 그대로 확정됐다. 그는 "미국 투어가 최종 목표다. 국내투어에서 실력을 더 쌓아서 미국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투어 시드가 없던 김성현은 무명선수다. 이번 대회에 월요예선을 치러 출전했다. 2017년 투어 프로가 된 그는 일본 2부투어와 국내 2부투어 우승 경력은 한 번씩 있지만 국내 정규 투어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정규 투어 대회라곤 총 8번이 전부. 가장 좋은 성적이 공동 42위(2016년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였다. 9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생애 첫 승을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신고하는 말 그대로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우승상금 1억8000만원을 챙긴 김성현은 김주형(18)을 제치고 단숨에 상금 랭킹 1위(1억8236만원)로 올라섰다. 5년간의 투어 시드도 부상으로 챙겼다. 오는 10월 열리는 PGA투어 CJ컵 나인브릿지 대회 출전권도 받았다. 최종일 선두로 나선 박정민은 이날 6타를 잃고 공동 14위로 대회를 아쉽게 마쳤다. 함정우가 이재경과 함께 4언더파 공동 2위에 자리했다.

한편 이번 대회는 커트탈락 선수들에게도 1인당 200만원씩의 수당을 지급했다. KPGA와 풍산이 100만원, 에이원CC가 100만원을 내 수당을 만들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