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업급여 반복해서 타가는 사람들…'공공알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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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6월까지 3회이상 반복수급 2만4884명"자네 통장에 내일 100만원 들어오면 인출해서 좀 주시게. 술 한잔 살게."
이 중 60세이상이 9406명으로 전체의 38%
업종별로도 '세금일자리' 많은 '공공행정'이 최다
서울의 한 중견기업을 10여년간 다니고 지난 4월 퇴사한 A씨(63)가 최근 후배를 만나 건넨 말이다. 퇴직 후 실업급여(구직급여)를 받고 있지만 지인 회사 일을 도우며 받은 급여를 후배 통장을 통해 받고 있다. A씨는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 이후에는 정부 공공일자리에 취업해 또다시 실업급여 수급 자격을 맞출 생각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부정수급이자 실업급여 반복수급의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가 실직자에게 지급하는 실업급여 반복수급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중 상당수는 정부 공공일자리에 참여한 6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직자의 생계 보장과 구직활동을 지원하겠다는 고용보험 취지와 달리 비교적 손쉬운 재정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정부가 청년실업 해소를 외치면서 정작 정책은 세금일자리에 집중함으로써 청년들은 취업을 못해 실업급여 수급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정책 엇박자'라는 비판도 나온다.
9일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업종·연령대별 실업급여 반복수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6월말까지 실업급여 수급자 중 직전 3년간 3회 이상 반복수급자는 2만4884명이었다. 이 가운데 60세 이상은 9406명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업종별로는 대표적인 재정일자리 분야인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이 8115명으로 다른 업종을 압도했다. 매년 취업과 실직을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챙기는 사람들의 약 40% 가량이 60세 이상 또는 재정일자리 참여자라는 얘기다.
실업급여는 정부가 평상시에 근로자와 회사로부터 거둬놓은 보험료(고용보험기금)에서 실직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생활안정 및 구직활동 지원금이다. 실직 전 6개월(유급주휴일 포함 180일) 동안 고용보험에 가입했다면 계약해지, 권고사직 등 근로자가 원치 않는 실직을 했을 경우 받을 수 있다. 지급기간은 최소 4개월(120일), 최장 9개월(270일)이다. 지급액은 하루 최소 6만120원이다. 악화되는 청년실업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실업급여 수급자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17년 119만6397명에서 2018년 131만5030명, 2019년 144만3434명에서 올들어서는 6월까지만 112만4642명이 실업급여를 받았다.
문제는 실업과 취업을 오가며 반복적으로 실업급여를 챙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직전 3년간 실업급여를 3회 이상 수령한 사람은 올해 상반기에만 2만4884명이었다. 지난해 전체를 통틀어 3회이상 수급자(3만6315명)의 69% 수준이다. 3회이상 반복수급자는 2017년 3만3262명, 2018년 3만4516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실업급여 반복수급 급증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용충격도 있지만 일해서 버는 돈보다 많은 실업급여 지급액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겠다며 지급기간과 액수를 늘렸다. 그 결과 올해는 급기야 최저임금액보다 실업급여가 많은 상황이 벌어졌다. 정부가 구직노력 독려는커녕 실업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또 다른 문제는 실직자에 대한 관리보다는 지원 확대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고용보험 제도 취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3회이상 반복수급자는 급증하고 있지만, 수급자들의 재취업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 중 74.3%는 수급 기한이 끝날 때까지 실업급여를 받았다. 수급자 네 명 중 세 명은 실업급여가 나오는 동안 취업을 하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얘기다. 실업급여 수급자의 재취업률은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29.8%에서 2018년 28.7%, 지난해 25.7%로 떨어지고 있다.
이렇다보니 실업급여 지출은 급증했고,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고용보험기금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실업급여 지급액이 1조1103억원에 달하는 등 매달 사상최고치를 경신하자 3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재정에서 3조4000억원을 긴급수혈했다.
고용보험기금 고갈 우려까지 나오는 데는 정부의 방만한 기금 운용과 허술한 제도 운영 탓이 크다. 지난해 정부가 만든 직접일자리 참여자는 총 143만3000명이었다. 이 중 60세 이상은 96만3000명으로 67%였다. 직접일자리 참여자 중 고용보험 가입자는 26만1000명, 이 가운데 60세 이상은 12만8000명(49%)이었다. 이렇다보니 지난해 실업급여 3회이상 수급자 3만6315명 중 60세 이상이 1만3833명(38%)에 달했다. 올들어서도 6월까지 직전 3년간 3회이상 수급자(2만4884명) 중 9406명(38%)였다. 고용보험법 상 65세 이상의 고용보험 신규 가입은 불가능하지만 이전 가입경력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반면 29세 이하 실직자의 경우, 3회이상 수급자는 1020명으로 60세이상의 9분의 1에 불과했다. 30대도 2507명이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보험, 특히 고용보험의 취지는 보다 많은 사람이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재정일자리 같이 특정 사업이나 특정 연령대에 혜택이 집중되는 것은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종별 실업급여 반복수급 현황에서도 '쏠림현상'은 뚜렷하다. 올들어 6월까지 3회이상 반복수급자가 가장 많은 업종은 '공공행정' 분야(8115명)였다.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만드는 대표적인 직접일자리가 대다수인 업종이다. 고용부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 전체 근로자가 21만4000명 감소하는 와중에 공공행정 분야는 4만9000명이 늘었다. 공공행정분야 전체 종사자는 80만명 수준이다. 반면 종사자가 365만명에 달하는 제조업에서 실업급여 3회이상 수급자는 1028명에 불과했다. 226만명이 일하는 도·소매업에서는 635명, 114만명이 속한 음식·숙박업에서는 571명이었다. 정작 코로나19 타격이 심각하고 청년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취업조차 어려운 반면 세금일자리 업종에서는 잦은 입·이직으로 실업급여 반복수급도 용이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이유로 손쉬운 재정일자리를 늘리면서 고용지표 개선에만 골몰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홍석준 미래통합당 의원은 "고용정책의 핵심은 신기루 같은 공공행정 일자리 양산이 아닌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실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는 덴마크처럼 구직노력 의무를 강하게 부여하고 이를 철저히 확인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