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실업수당 분담" 명령…州정부 "돈 없다"
입력
수정
지면A10
행정명령 서명 하루만에 혼란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와 주(州)정부가 분담해 실직자들에게 1주일에 400달러의 실업수당을 지급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하루 만에 일부 주정부가 “우린 돈이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정부가 300달러, 주정부가 100달러를 부담하도록 했는데 주정부가 난색을 보이면서 300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되는 실직자들이 이 수당을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해졌다. 실업수당이 지급되지 않으면 실직자들의 소비가 급감해 미국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400달러 중 25% 내라" 요구
주지사들 "재정난에 지불 못해"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까지 반발
하원의장 "일방적 부양책, 위헌"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견으로 의회가 5차 부양책 합의에 실패하자 지난 8일 일방적으로 행정명령을 통해 실업수당 감액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당초 연방정부는 지난 3월 의회를 통과한 2조2000억달러 규모의 3차 부양책에 따라 7월 말까지 주당 600달러의 실업수당을 지급했다. 민주당은 이를 내년 1월까지 연장하자고 했고, 공화당은 감액하자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주당 400달러로 낮추되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각각 75%와 25%의 비율로 분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이날 기자들과의 전화통화에서 “각 주에 25%를 내라는 건 웃기는 얘기”라며 “주에서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그레천 위트머 미시간주지사도 이번 행정명령을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한 주들에 실업수당을 내라고 명령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주지사도 CNN에 출연해 “오하이오주가 돈을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의회가 서둘러 부양책에 합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재정적자를 감수할 수 있는 연방정부와 달리 많은 주정부는 매년 예산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전했다. 세수가 부족하면 서비스를 줄이거나 주 세금을 올리는 등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CNN에 출연해 재무부 추계를 보면 3월 부양책에서 각 주에 배정된 예산이 모두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들이 실업수당을 지급할 여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주정부의 지급 여력뿐 아니라 위헌 논란도 실업수당 지급의 변수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를 “헌법에 위배된다”고 비난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ABC뉴스에 “(이번 조치는)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벤 새스 공화당 상원의원도 민주당에 동조했다. 반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폭스뉴스에 “법률고문실에서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실업수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장을 잃거나 무급휴직 중인 미국인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미국 실업률은 6월 11.1%에서 지난달 10.2%로 둔화됐지만 여전히 2월 3.5%에 비하면 비상상황이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에 달하는 만큼 실직자들의 실업수당이 끊기면 경제 회복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게다가 코로나19는 아직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미 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이날 500만 명을 넘었다. 지난달 23일 400만 명을 돌파한 지 17일 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바구니 물가는 급등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2~6월에 소고기값은 25% 뛰었고 돼지고기 가격도 9% 올랐다. 계란은 10%, 음료수는 5%, 채소는 4% 상승했다. 이 기간 대대적인 봉쇄령으로 ‘사재기’ 등 식료품 수요가 늘었지만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워싱턴=주용석/뉴욕=조재길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