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절대 과반은 '절대 반지'가 아니다

'입법 독주' 비판 자초하는 巨與
'나는 善 너는 적폐' 오만과 독선
정치를 양극화해 민주주의 후퇴

'절대 과반' 착시서 벗어나
업적에 대한 조급함 내려놓고
국회를 정상으로 복귀시켜야

김인영 <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
민심이 들끓고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이다. 여당의 국회 운영 독주도 여론을 악화시키며 ‘입법 독재’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역대 최대인 35조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단독 처리하고, 장관 청문회를 무력화하고, ‘임대차 3법’ 심의에서 토론조차 허용하지 않은 채 법안을 밀어붙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선출된 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해 가는지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논평했다. 정치학 관점에서 보면 입법부 국회가 청와대로 빨려 들어가는 민주주의 후퇴의 모습이었다.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가져온 민주주의 후퇴를 설명하며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미국이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그것은 ‘헌법, 자유와 평등에 대한 확고한 믿음, 탄탄한 중산층, 높은 수준의 부와 교육, 다각화된 민간영역’의 존재였다.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정치적 이익에 따라 언제든 헌법 개정이 시도되고 있고, 민주당과 통합당 양대 정당에 자유와 평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통합당은 평등에 대한 신념이, 민주당은 자유에 대한 신념이 의심스럽다. 최근엔 굳건했던 중산층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한국의 민주주의 공고화가 특히 어려운 징후는 보수·진보로 양극화된 정치 균열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권 전체가 보수·진보로 나뉘어 ‘나는 선(善), 너는 적폐(積幣)’로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 양극화가 만들어낸 ‘감정의 양극화’는 더 아프다. 그러나 전성기 미국 민주주의의 특징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이고 대화하고 타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교정책에서는 차별성 없이 국론 일치를 보였고, 복지에서만 차이를 보이는 정책 수렴 현상이 일어났다. 민주적 국회 운영의 핵심이 상대 정당을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 인식하는 데 있음을 알려준다.

물론 민주당이 정치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과 부동산 법안 통과를 강행한 이유를 이해한다. 문재인 정권이 당면한 ‘업적에 대한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집권 4년차에 들어선 정권의 업적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비핵화도 남북교류도 사라졌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소득 정체와 최악의 청년실업률이 일상화됐으며,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정권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그동안은 잇따른 선거 승리와 대통령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율이 정책 실패를 가렸지만 부동산 가격만큼은 제어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몰락을 초래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오버랩되며,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절박함이 ‘속도’가 중요하다는 판단을 끌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국민이 신뢰할 만한 균형 잡힌 정책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절차적 공정함이 곧 정의임을 명심해야 했다.하지만 총선 승리로 인한 여당의 오만함은 이성을 가렸다. 마지막 한 사람의 반대까지 챙길 때 국민 지지율이 상승함에도 “‘절대 과반’ 민주당이 18개 국회 상임위원장 모두 가져야 한다. 야당과 협상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여기서 ‘절대 과반’은 아마 단순 다수, 절대다수에서 용어를 차용한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절대 과반은 성립하지 않는다. 과반이란 ‘절반이 넘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단순히 넘음’과 ‘절대적으로 넘음’을 구분할 기준이 없으니 단순 과반, 절대 과반이 존재할 리 없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얻은 득표율 49.9%도 과반에는 못 미친다. 그런데도 ‘절대 과반’이라며 ‘절대다수’와 혼동했다. 그리고 존 로널드 톨킨의 판타지 서사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를 차지한 양 행동했다.

이제라도 지지율을 회복하고 ‘입법 독주’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민주당은 ‘절대 과반’의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당을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 인식하고 관용해야 한다.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을 견제하고 삼권 균형을 지켜내는 일도 중요하다. 비정상 국회를 정상으로 복귀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