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불장군 정부' vs '냉정한 시장'…결과는 집값 상승 [여기는 논설실]

"집값 안정됐다"면서 기형적 부동산 감독기구 추진,모순 아닌가
정부는 흥분, 시장 참여자는 냉철…결과 정해진 싸움 될 판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부동산, 아니 집값, 그것도 아니라 서울집값 대책이 몇 차례나 이어졌는지 이제는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8월 10일 청와대에서 한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 검토설’은 대책의 횟수에 넣어야 하나, 제외해야 하나. 설령 엄포라 해도 내용은 매우 이례적이고 강력한 것이다.

23번이나 계속된 강경일변도 정책에도 서울과 수도권 집값은 상승세였다. 정부·여당 정책 입안자들의 답답함이 어느 정도일지, 또 초조감은 어떨지 짐작도 되고 이해도 된다. 전 세계적인 저금리 와중에 공급은 막아오면서 수요억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집값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상황 자체가 그렇다. 그런데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고 있다”고 하면서 부동산시장 감독기구 설치를 검토하겠다는 건 또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상황인식과 진단, 파악에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며 왜 이런 무리한 정책을 이어가려할까. 마치 “3년간 11%밖에 오르지 않았다”면서도 대책은 23번이 냈던 이유는 무엇인지, 또 청와대의 비서실상과 수석 등이 일거에 집단 사표까지 냈던 상황은 어떻게 됐던 일인지 만큼이나 이상하다.

거친 반시장 정책… 나라밖과 장래까지의 부작용도 봐야

모두가 조금 냉정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시장 참여자들도 그렇지만, 정부가 특히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급하다고 입법권, 행정력을 남용해서는 곤란하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이게 과연 합헌적인가 하는 내용까지 포함된 초강력 대책에도 정책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른바 ‘강남지역 잡기’는 특히 실패의 연속이었다. 타깃으로 잡고 겨냥하는 쪽보다 다른 곳에서 아우성과 비명이 더 커지는 것도 정부·여당의 특정지역 때리기가 안고 있는 큰 딜레마일 것이다.

정부 정책이든, 개인의 사고팔기 투자든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론’에 빠져선 곤란하다. 자기체면이나 자기확신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본다면 당위론이나 자기확신에 빠진 정부와 일련의 정책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향후 방향을 내다보는 시장, 즉 매매 거래자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까. 다소간 분노한 듯 약간은 흥분한 상태에서 강펀치를 휘두르는 정부와 가드를 올린 채 상대방의 수를 읽으며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시장과의 전투다. 누가 이길지 답은 정해져 있다고 본다. 의욕은 앞서지만 덤벙대는 공격수와 치밀하고 전략적인 방어수와의 대결이라면…. 어떤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싸움은 ‘재산권을 경시, 압박하는 쪽’과 ‘내 (전)재산 지키려는 쪽’과의 대립이라고. 물론 시장에서 주택구입 희망자, 즉 수요자들의 행렬을 재산지키기에 나선 그룹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비약일 수 있지만, 유주택자와 정책의 대립, 현금에 대한 불신시대 자산시장의 변동 등의 각도에서 보면 설득력을 가지는 분석이다.

퇴진한다는 김조원 민정수석 등 청 최고위급 참모들 의사결정을 보라. 장관이든 수석이든 1-2년짜리 공직과 고가 아파트는 비교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게 세상의 평가다. 적어도 적지 않은 시장 참여자들 인식은 그런 편이다. 다원화된 탈권위 민주사회에서 경제 문제, 재산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모양이다.

어떤 분야, 어떤 영역이든 정부와의 대립이나 싸움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다. 완전히 레임덕에 빠진 정부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지금 상황이 꼭 그렇다는 징후도 없다. 물론 후반기 정권의 힘빠진 모습은 언제나 우리가 지켜봐왔던 바다. 중요한 것은 강력한 정책일수록 논란도 따라 커지면서 부작용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항암제같은 치료 약물이 그렇듯이 정책도 늘 그렇다. 정부가 이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해외시각, 한국으로 잠재 투자자나 투자희망자들의 시각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주식 채권 등 자본시장만의 일이 아니다. 제조업·서비스업 등 직접 투자에서도 투자자들은 ‘정책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해외로 나갈 때도 이런 것을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여기지 않나. 정책리스크 정치리스크의 판단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 소유권과 사적자치의 존중, 세제의 안정성 등이다. 소급행정이 횡행하고 헌법보다 법률이, 법률보다 하위 시행령이, 시행령·시행규칙 같은 문서화되고 명문화된 법규보다 정책입안자들의 언행과 행태가 더 무서운 사회로 투자자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시·군·구 기초의회의 조례가 헌법알기를 우습게 아는 나라라면 글로벌 투자가들이 올 이유가 없다. 부동산 집값 다 중요하지만, 다른 쪽도 봐야 하고 멀리까지의 파장도 내다봐야 한다. 경제문제는 고리에 고리로 이어지고, 결국 정치·사회 문제로도 이어진다. 다양한 전문가들의 말에 귀기울여보면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시장 이긴 정부 없다'되나 '시장 이긴 정부 되나'
어느 쪽이든 큰 후유증…차라리 '휴전'을

‘시장과 싸워 이긴 정부 없다’가 맞게 될까. ‘정부와 싸워 이기는 시장 없다’는 명제가 나오게 될까. 끝장을 보겠다는 식이면, 어느 쪽이든 한쪽은 치사지경의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끝내 이겨도 부작용은 만만찮을 것이고, 시장참여자들이 이겨도 결과는 무서울 것 같다. 정부개입이 강화될수록 전세물량은 줄어들고 세입자들도 결코 편하지 않게 됐다는 시장동향 분석은 예고편을 보는 것만 같다.
정부가 슬쩍 물러서는 길이 좀 쉬운 길 같아 보이기는 하다. ‘타협적 전환’이라고 할 만한 상황, 이 정부가 그렇게 전환할 지…. ‘주택의 정치학’에서 벗어나 ‘주택의 경제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과연 오기와 결사항전의 태세로 싸울 일일까. 그보다는 정전 내지는 휴전은 어떨까. 어차피 대한민국도 정전협정에 따른 휴전 국가 아닌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