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 에너지시장이 주택시장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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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수요 과소평가한 脫원전주택시장을 둘러싼 논란이 세간을 달구고 있다. 집값이 너무 빠르게 많이 올랐다. 스물두 차례인지, 네 차례인지 모르겠지만 국민이 느끼는 부동산 대책은 거의 매달 나오는 것 같아 어지럽기만 하다. 대책이 나올 때마다 주택시장을 옥죄는 새로운 규제가 추가된다. 규제의 강도는 매번 역대급이다. 그래도 여전히 집값은 잡히지 않는다. 집에 대한 초과수요가 근본적으로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요 억제하고 공급엔 소극적인
주택시장의 실패와 비슷한 흐름
전력소비가 예상보다 크게 늘면
고밀도 에너지 원전 역할 절대적
더 이상 탈원전 고집해선 안돼
박주헌 <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
처방은 간단하다.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이면 해결된다. 이번 정부는 100%에 가까운 주택 보급률을 근거로, 공급은 충분한데 투기수요 등 가수요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고 진단했다. 당연히 공급을 늘리지 않고, 수요 억제에만 매달렸다. 재건축·재개발을 제한했고, 수요를 때려잡기 위해 보유세와 거래세를 모두 인상했다. 그러나 완전히 빗나간 진단과 처방이 됐다.현실은 1인 가구를 비롯한 소규모 가구 수 증가와 주거환경 개선 욕구가 맞물리며 양질의 소형 주택 수요가 서울을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택지 공급에 한계가 뚜렷한 서울에선 저밀도 주거지를 고밀도로 개발하는 방법 외에는 공급을 늘릴 방안이 마땅치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건축·재개발을 제한했고, 서울시는 기존 건물을 최대로 보존하는 저밀도 개발 방식을 고집했으니 주택 가격 폭등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전력시장이 주택시장의 실패를 너무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전력시장 정책인 탈(脫)원전, 탈석탄,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완만한 전력수요 증가 추세를 가정하고 적극적인 수요관리를 통해 실제 전력수요를 크게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 반영된 2020∼2034년 기간 중 전력수요는 2019년 90.3기가와트(GW)에서 2034년 104.2GW에 이를 전망인데, 이는 연평균 증가율이 1.0%로 과거 추세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당연히 수요 전망에 기초해 수립되는 공급계획인 발전설비 증가에는 소극적이다.
주택수요의 증가 전망을 과소평가함과 동시에 수요 억제 정책을 통해 수요 증가를 억누르며 주택 공급에 소극적이었던 주택시장과 너무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고밀도 에너지인 원전과 석탄발전의 비중이 46.3%에서 2034년에는 24%로 줄어드는 반면, 저밀도 에너지인 태양광·풍력 등 전원의 설비 비중이 15%에서 40%까지 늘어나는 전원구성 변화는 흡사 주택시장에서 고밀도 개발을 포기하고 저밀도 개발 방식을 고집하는 것과 비슷하다.주택수요 예측 실패가 주택시장의 대란을 초래했듯이, 전력수요 예측 실패는 전력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주택시장에서 초과수요는 가격 폭등으로 나타나지만, 전력시장에서 초과수요 발생은 블랙아웃으로 이어져 경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초대형 대란이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전기차, 인건비 상승에 따른 자동화 추세, 소득 증가에 따른 전력화 추세 등 전력수요가 예상과 달리 급증할 수 있는 요인은 너무도 많다는 데 있다.
전력수요가 예상에서 벗어나 크게 증가하면, 날씨에 따라 들쑥날쑥할 뿐만 아니라 설치면적도 엄청나게 필요한 저밀도 에너지인 태양광·풍력만으로 충당하기 어렵다. 마치 서울에서 증가하는 주택 수요를 그린벨트를 풀어 저층 임시 주택을 마구 짓는 난개발로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도심에 사시사철 언제든 안락한 거주가 가능한 초고층의 현대식 아파트 공급이 필요하듯이, 전력 공급에도 제한된 부지에서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든 생산이 가능한 원전과 같은 고밀도에너지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
지역에 따라 고층 아파트와 저층 주택을 적절히 섞어 공급해야 하듯이 전원계획도 다양한 에너지를 적절히 섞는 일이지, 특정 에너지를 밀어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화석에너지 비중은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지만, 원전을 비롯한 기존의 에너지원은 어느 것 하나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일본의 예에도 주목해야 한다. 주택정책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50층 아파트를 허용하는 고밀도 개발로 선회한 것처럼 탈원전 정책을 고집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