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데이터 댐'만 만들면 뉴딜인가

"디지털 전환만 하면 된다는 착각
전략 안 보이는 제조업 디지털화
글로벌 외국기업 잔치판 될 우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미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확장은 대학과 컨설팅업체, 기업이 손잡은 ‘삼각편대의 진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대학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면, 컨설팅업체는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라며 전 세계로 확산시킨다. 여세를 몰아 신(新)비즈니스 모델로 무장한 기업이 국경을 넘어 공략한다. ‘디지털 전환’이 좋은 사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디지털 전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디지털 기반 플랫폼 기업이 향후 10년간 글로벌 총생산(GDP) 중 신규 부가가치의 70%를 창출할 것이란 세계경제포럼(WEF)의 전망이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 흐름을 누가 제일 반길까?어쩌면 미국 기업들이 가장 환호하고 있을지 모른다. 글로벌 시총 상위 100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명단(S&P Capital IQ)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가별로 분류한 바에 따르면 미국 57개사, 중국 12개사, 유럽 11개사, 일본 10개사, 인도 3개사, 한국 1개사 등이었다. 미국은 애플·MS·아마존·알파벳(구글)·페이스북·테슬라·엔비디아·넷플릭스 등이 보란 듯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삼성전자만 이름을 올렸다.

ICT기업과 비(非)ICT기업의 구분이 사라지는 디지털 전환이 완성되면 이 판도가 바뀔까? 판세를 장악한 미국 기업들의 허를 찌르는 차별화 전략을 후발 주자들이 강구하지 않으면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판 디지털 뉴딜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부는 ‘데이터 댐’ 등 대규모 ICT 인프라 구축, 데이터 수집·표준화·가공·결합 고도화 등 데이터 경제의 촉진을 말하지만, 이를 통해 한국이 글로벌 기업을 얼마나 배출할 수 있느냐는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데이터 공급만 외치다가 활용 능력이 뛰어난 미국 등 글로벌 기업들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벌써부터 정부가 들고나온 전 산업의 D.N.A(Data·Network·AI) 생태계 조성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 외국기업이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개인정보 데이터 플랫폼 쪽은 미국이 이미 견고한 글로벌 주도권을 구축한 형국이다. 마땅히 경쟁할 기업이 없는 유럽연합(EU)은 데이터 규제권 행사 말고는 대응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 희망이 있다면 미국이 아직 장악하지 못한 분야가 산업, 그중에서도 제조업이란 것을 간파하고 ‘인더스트리 4.0’의 진화에 승부를 걸고 있는 독일일 것이다.

독일보다 국내총생산 대비 비중이 높은 한국 제조업의 디지털화는 무슨 차별화 전략을 펼치고 있을까? 불행히도 한국판 디지털 뉴딜에는 데이터·플랫폼 얘기만 무성할 뿐 무엇을 위한 데이터·플랫폼인지 방향성이 안 보인다.예산 전쟁으로 변질된 디지털 뉴딜은 부처 간 영역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주력 제조업의 데이터 댐을 만든다고 하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제조업체를 위한 데이터 기반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산업부는 주력산업 지능화를 촉진하는 법을, 중기부는 중소기업 제조혁신 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을 보면 이들이 제조업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목적은 다른 데 있다는 의구심만 짙어진다.

중구난방 전략으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전제로 제조업을 혁신하고 스마트팩토리 자체를 판매하겠다는 독일을 이길 수 없다. 스마트팩토리로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도 단순히 비용을 낮추는 쪽이라면 중국에 밀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 무서운 쪽은 미국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지식재산(IP) 등으로 빨리 무장하지 않으면 이 분야에서 가격 결정권을 쥔 미국 기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방향성도 없이 디지털 전환, 제조업의 디지털화만 부르짖는 뉴딜은 글로벌 외국기업들의 잔치판이 되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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