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규제 본떠 만든 한국 '화평법'…정작 유럽기업은 中·印으로 공장 이전

獨·스위스 등 비용 늘며 줄도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화평법)은 유럽연합(EU)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참고해 제정됐다. REACH는 ‘정보 없이는 시장에 출시할 수 없다(no data, no market)’는 원칙 아래 모든 화학물질의 위해성을 사용하는 업체가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기업이 직접 사용하고자 하는 화학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얼마나 유해한지를 시험기관이나 자료를 통해 입증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으로 갑작스럽게 제도를 도입한 한국과 달리 유럽은 10여 년에 걸쳐 REACH 도입을 논의했다. 그럼에도 부작용이 컸다. 제도 이행에 어려움을 겪던 기업들이 인도나 미국 업체에 매각되거나 폐업·도산하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정밀화학업계 선두를 차지하던 독일과 스위스 기업들도 REACH 때문에 생산공장을 인도와 중국 등으로 이전했다”며 “2013년엔 EU위원회가 선정한 중소기업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법률로 REACH가 꼽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염료시장을 이끌던 독일과 스위스는 REACH가 시행된 2007년 후 수출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섬유 염색에 사용되는 반응성 염료의 스위스 수출 규모는 2006년 1만5000t에서 2016년 2500t 이하로 10년 만에 6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독일의 수출 규모 역시 같은 기간 2만7000t에서 5000t대로 5분의 1로 줄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 대만의 관련 제도가 유럽 REACH를 모방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