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법 비용도 1조원…외국 화학업체들 배만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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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등록기준 점차 강화‘화평법’으로 불리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도 화관법과 함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체들을 짓누르는 요인이다. 내년 말까지 연 1000t 이상 기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회사들이 물질의 유해성 자료를 환경부에 등록하도록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의 등록 비용을 합치면 최대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등록비용 물질 1건당 최대 20억
시험자료 대부분 해외서 사와야
제품값 인상 이어져 수출도 타격
기존 물질뿐만 아니다. 연간 취급량 100㎏ 이상인 신규 화학물질은 무조건 등록하고, 100㎏ 미만도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한 세계 최고 수준의 신규 화학물질 등록 규제 역시 업계에 큰 부담이다. 현재 시행 중인 이 규제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옷과 화장품, 스마트폰 액정, TV 등 제품에 색깔을 입히는 염료·안료산업과 염색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평법에 따르면 각 업체는 취급하는 화학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공인시험기관에 의뢰해 작성하거나 기존 평가 자료를 구매해 환경부에 제출해야 한다. 각 화학물질을 등록할 때마다 5000만원에서 최대 20억원가량의 비용이 든다. 기업이 부담해야 할 화평법 규제비용은 내년까지 1조원에 달한다는 게 중소기업중앙회의 분석이다. 이는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화평법상 화학물질 등록 의무로 인해 발생하는 수십억원의 비용을 영세 업체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화학물질을 다품종 소량 판매하는 염료·안료, 페인트잉크 업종 기업은 수백 종의 등록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사업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공장의 해외 이전이나 폐업이 급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화평법으로 염료·안료산업에서 염색산업, 섬유산업으로 이어지는 산업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화학업체 관계자는 “염료·안료, 표백제, 섬유 보조제 등 국내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염색 가공업체들이 국내 조달 대신 비용이 저렴한 저품질의 중국 및 동남아산 제품으로 눈을 돌리면 소비자 안전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외국 화학회사들은 ‘특수’를 누리게 될 전망이다. 화평법을 적용받는 국내 업체들이 화학물질 등록에 반드시 필요한 시험자료 대부분을 독일 바스프나 헨켈, 미국 다우케미칼 등 글로벌 화학업체로부터 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대만 등은 한국과 달리 기존 화학물질 정보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파악한다. 기업에 등록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는 편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