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고기 구워먹을 때 지켜야 할 '암 예방수칙'

고온에 바싹 익힐수록 발암위험 높아…상추·깻잎 등 채소 곁들여야
미국암연구소 "적색육 섭취, 1주일에 500g 넘기지 말아야" 권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캠핑족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비록 캠핑장에서조차 집단감염 사례가 나왔지만, 그나마 야외활동에서 코로나19가 전파할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캠핑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바비큐다.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가족과 오손도손 나누는 대화는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든다. 그런데, 맛있는 고기를 먹을 때도 알아두면 좋은 게 있다.

바로 올바른 섭취 요령이다.

사실 고기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지만, 자칫 과도하거나 잘못 섭취할 경우 질병을 일으키는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소시지·햄·핫도그 등의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가공육이 담배나 석면처럼 발암 위험성이 크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면서 붉은색을 띠는 고기(적색육)도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발암 위험 물질(2A군)로 지정했다. IARC는 특히 적색육 섭취가 대장암은 물론 췌장과 전립선에도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적색육에는 소·돼지·양·말·염소 고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 문헌, 전문가의 도움말로 구운 고기의 위해성과 바람직한 고기 섭취 요령을 알아본다.
◇ 고온에 바싹 익힐수록 발암물질↑…채소 곁들이면 발암위험 '뚝'
미국 환경보호국(EPA) 데이비드 M.디마리니(David M. DeMarini) 박사팀이 2013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한 논문은 임상시험을 근거로 적색육 섭취와 대장암 위험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분석한 첫 연구성과로 꼽힌다.

디마리니 박사팀은 당시 대장암과 구운 고기 섭취의 상관성을 보기 위해 16명의 지원자에게 총 4주 동안 100℃의 온도에서 덜 익힌 고기(rare, medium, medium well-done)와 250℃의 온도에서 바싹 익힌 고기(well-done)를 각기 먹도록 했다.

그런 다음 매주 각 지원자의 소변과 혈액을 채취하고, 직장 검사를 했다.

이 결과 상대적으로 고온에서 요리한 고기는 돌연변이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암을 촉진하는 물질인 '헤테로사이클릭 아민'(HCAs.heterocyclic amines) 농도도 치솟았다.

반면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요리한 고기는 돌연변이율과 발암물질 수준이 모두 낮았다.

또 저온에서 거의 타지 않은 고기를 섭취한 그룹에 견줘 고온에서 탄 음식을 섭취한 그룹의 대장상피세포 내 DNA 돌연변이가 더 심했다.

하지만, 고온에서 요리한 고기만 섭취했더라도 십자화과 채소(배추와 양배추, 브로콜리, 케일 등)를 함께 섭취한 그룹은 대장상피세포의 DNA 돌연변이율이 낮아졌다.

소변검사를 통한 '돌연변이유발원'(Urine mutagenicity) 평가에서도 고온에서 바싹 익힌 고기를 섭취한 그룹의 돌연변이유발원이 낮은 온도에서 덜 익힌 고기를 섭취한 그룹보다 1.9배가량 높았다.

그러나 돌연변이를 막아주는 상추와 양배추 등을 함께 섭취한 그룹은 소변 내 돌연변이 유발원이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 과도한 적색육·가공육 섭취는 위암 발생에도 나쁜 영향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이 적색육, 가공육, 백색육 섭취가 각각 위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국내외 연구결과 43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지난해 국제학술지 '뉴트리언츠'(Nutrients)에 발표한 논문도 주목할만하다.

분석에 사용된 논문은 위암 발생과 육류섭취의 연관성을 장기간 관찰한 코호트(역학) 연구가 11편(연구참여자 176만명 중위암환자 4천314명), 위암환자(1만2천258명)와 건강한 대조군(7만6천806명)을 직접 비교한 연구가 32편이었다.

분석 결과, 적색육 섭취량이 가장 많은 그룹이 가장 적은 그룹에 견줘 위암 발생 상대위험도가 41% 높았다.

가공육 상대위험도는 같은 비교 조건에서 57%나 증가했다.

반면, 백색육 섭취량이 가장 많은 군이 가장 적은 군보다 위암 발생 상대위험도가 오히려 20% 줄어드는 것으로 평가됐다.

세부적인 고기 섭취량(용량-반응 메타분석)을 기준으로 보면, 적색육을 매일 100g씩 먹을 경우 적색육을 먹지 않는 사람보다 위암 발생 위험도가 26% 높았다.

특히 가공육은 매일 50g씩 먹을 경우 위암 발생 위험도를 72%나 증가시켰다.

연구팀은 적색육이나 가공육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위암 발생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 임신 중 구운 고기 먹으면 저체중아 출산 위험 높아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임종한 교수팀이 2016년 공중보건 분야 국제학술지(Public Health Nutrition)에 발표한 논문은 조금 더 충격적이다.

연구팀은 2006∼2011년 사이에 임신 12∼28주였던 778명을 대상으로 추적조사를 벌여 임신 중인 여성이 불에 굽거나 기름에 튀긴 고기를 많이 먹으면 저체중아를 낳을 위험이 크다는 결론을 냈다.

그 원인으로는 높은 온도의 불판이나 불꽃, 기름에 직접 접촉하면서 고기를 조리할 때 나오는 발암성 유해물질인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PAHs)가 지목됐다.

조사 대상자 중 52%가 임신 중에 다량의 PAHs가 배출될 수 있는 형태로 고기를 섭취했는데, 섭취 빈도는 '거의 안먹는다'(1단계)거나 '1개월에 1차례'(2단계)에서부터 '하루 3차례'(9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1단계 그룹 사이의 아이 몸무게 차이는 17.48g이었다.

다시 말하면 높은 온도에서 고기를 직접 익혀 먹는 양과 빈도가 1단계 높아질수록 아이의 몸무게는 17.48g 적었다는 얘기다.

전체적으로는 직화 고기를 임신 기간에 전혀 먹지 않은 임신부와 하루 3차례 이상으로 많이 먹은 임신부가 낳은 아이의 체중 차이는 최대 174g에 달했다.

임종한 교수는 "고기를 직접 굽거나 기름에 튀길 때 나오는 벤조피렌 등의 유해물질은 몸속에서 염증반응을 일으키면서 태반 혈관에 손상을 일으키거나 염증 물질 자체가 직접 태아한테까지 흘러 들어갈 수 있다"면서 "이럴 경우 태아의 체중이나 키, 머리둘레가 줄어들거나 미숙아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 미국암연구소 "적색육, 1주일에 500g 넘기지 말고 가공육은 최소화해야"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고기를 먹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다만, 고기를 구울 때 가급적이면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익히고, 과도하게 태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암 예방 전문가인 서영준 서울대약대 교수(전 대한암예방학회 회장)는 "고기를 구울 때는 과도하게 태우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서 "먹을 때도 상추와 깻잎 등을 곁들이면 발암물질을 체외로 배출하는 '해독화효소'가 많이 생기는 만큼 야채를 듬뿍 곁들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디마리니 박사도 수년 전 한국 방문 당시 인터뷰에서 "바싹 태우지 않은 고기와 함께 십자화과 채소를 먹는다면 대장암과 관련 있는 유전자 차원의 독성 수준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고기 섭취량도 과도하지 않도록 식습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국암연구소(AICR)에서는 적색육 섭취량이 1주일에 500g을 넘지 않도록 권고한다.

통상 식당에서 파는 고기 1인분이 200∼250g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1주일에 2차례 정도가 적당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가공육은 섭취를 최소화하라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가급적이면 불에 직접 조리한 고기를 피하고, 삶거나 쪄서 먹는 게 좋다는 권고도 나온다.

임종한 교수는 "불에 직접 조리한 고기 대신에 삶거나 찐 고기를 먹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서영준 교수는 "삶거나 찐 고기에 야채를 듬뿍 곁들여 먹는 우리의 전통적인 고기 섭취 습관을 유지하면 암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