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록 전설 빅토르 최, 음주운전 사고로 숨져"

사망 30주기 맞아 목격자 증언…사고 현장 인근 거주 라트비아 여성
묘에 수천명 추모 인파…고인 음악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며 도개교 열려

옛 소련 시절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 빅토르 최(초이) 사망 30주기를 맞아 현지에서 각종 추모 행사가 열린 가운데, 빅토르가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자신을 파르슬라로 소개한 라트비아 여성은 빅토르의 사망 30주기가 되는 15일(현지시간) 러시아 TV 방송 NTV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했다고 밝혔다.

빅토르가 사고를 당한 곳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파르슬라는 그의 자동차가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집을 지나친 뒤 맞은편 차선으로 넘어가 버스와 충돌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충돌은 워낙 강력해 빅토르의 자동차 엔진이 튕겨 나와 나무에 부딪힐 정도였다고 파르슬라는 회상했다. 파르슬라는 바로 자신이 집 전화로 경찰과 구급대에 사고 신고를 했고 자동차에서 빅토르의 시신을 끌어내는 일도 도왔다고 말했다.

파르슬라는 사고 다음 날 지역 경찰로부터 빅토르의 혈액에서 1.2 퍼밀(‰) 농도의 알코올이 검출됐다는 얘길 들었지만, 이 부분이 웬일인지 이후 사고 조사 서류에서는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공식 발표에 따르면 빅토르는 소련제 소형 승용차 '모스크비치'를 몰다 졸면서 맞은편 차선으로 넘어가 버스와 충돌한 뒤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62년 옛 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옛 소련권 토착 한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는 19세 때인 1981년 록 그룹 '키노'(Kino)를 결성해 약 9년 동안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러시아 특유의 무겁고 우울한 선율에 옛 소련의 압제적 분위기에 맞서는 저항과 자유의 메시지를 담은 그의 음악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빅토르는 일약 소련 록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혈액형', '마지막 영웅', '변화를 원해' 등 수많은 히트곡이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러시아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기 절정에 있던 그는 1990년 8월 15일 순회 공연차 들른 라트비아 리가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2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공식 사고 원인은 졸음운전으로 발표됐으나 일각에선 타살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빅토르 사망 30주기인 이날 그의 묘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고슬로프스코예 공동묘지에는 수천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으며, 묘는 팬들이 헌화한 꽃으로 뒤덮였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일부 팬들은 그룹별로 모여 빅토르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우상을 추모했다.

이날 이른 새벽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네바강을 가로지르는 대형 도개교인 '궁전교'가 빅토르의 음악 2곡이 오케스트라 연주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갈라져 들어 올려지는 장관이 연출됐다.

또 전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키로프 지역에선 빅토르의 추모 동상 개막식이 열렸다.

추모비는 빅토르가 한동안 살고 공부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