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기술혁신으로 '꼬리위험' 대비해야

코로나가 드러낸 돌발재난 취약성
규제 풀어 기업 기술개발 장려땐
일자리와 소득 늘어 인류 발전

대런 애쓰모글루 < 美 MIT 교수 >
현대인은 운이 좋은 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이전보다 기근이 훨씬 줄었고, 대부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높아졌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에서도 평균 기대수명이 60세 이상이다. 반면 1820년대 영국인 기대수명은 40세 전후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 200여 년간 인류가 지식을 쌓고 기술을 혁신한 결과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생긴 위험도 여럿 있다. 그간 우리는 이런 위험에 대해선 크게 대비하지 않았다. 당장 발생한 일이 아니어서 준비를 뒷전으로 미뤘기 때문이다.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번졌다. 인류의 안일함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우리가 아무리 부를 축적하고, 산업이 발전하더라도 여전히 갑작스러운 재난이나 질병 등 ‘꼬리위험’에는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꼬리위험이란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현실화할 경우 엄청난 영향을 주는 변수를 뜻한다.

국제사회는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같은 꼬리위험을 대비하는 성장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준비해야 할 위험은 많다. 첫 번째는 산업 활동에 따른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는 산업 발전에 따른 부작용이 인류의 실존적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두 번째는 생태계 파괴로 인해 생물 다양성이 손실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화 이후 오늘날까지 멸종한 생물 수는 산업화 이전의 100~1000배가량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같은 위험에 대한 인식이 낮다. 세 번째 위험은 글로벌 핵전쟁이다. 핵 기술은 평화적인 쓰임새도 많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에 단기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반면 기술이 오용될 경우 인류에 엄청나게 큰 위험을 끼칠 수도 있다. 네 번째 꼬리위험 요소는 인공지능(AI) 기술이다. 우리가 이 기술을 통제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개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초지능 알고리즘이 인류를 전멸시키는 시나리오까지는 아니더라도 AI는 감시나 억압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같은 위험 요소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20세기 내내 국제사회는 수차례 핵 전쟁 위기를 겪었다. 지금껏 인류가 핵 전쟁을 피하긴 했지만, 이 사실만으로 핵 전쟁 위험성이 낮다고 가정해선 안 된다.기후변화와 AI 위험성에 대해선 ‘경제 성장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종종 나온다. 탄소 배출량을 줄여 자연 환경을 보존하고 기술의 오용을 막으려면 생산·투자·혁신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성장과 진보를 후퇴시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바람직하지도 않은 접근 방식이다. 세상이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여전히 빈곤을 종식하기엔 멀었다. 세계 각국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혁신 기술을 활용한 양질의 일자리다. 고용과 소득이 늘면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이는 인류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각종 꼬리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좋은 선택지는 딱 하나다. 글로벌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전략을 짜는 것이다. 기업과 기업가들이 필요 기술을 개발하도록 장려하고, 규제는 필요한 만큼 풀어줘야 한다. 에너지 기술 발전에 따라 재생에너지 사용이 늘어나고, 이를 통해 화석 연료 사용량이 줄어 기후변화를 더디게 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각 기업과 국가가 기술 진보에 힘쓰고 저탄소 정책을 추진한 결과다. 만약 탄소 배출 문제의 원인이 경제 성장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술 투자를 줄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 같은 방식은 다른 위험을 대비할 때에도 적용할 만하다. 일단 꼬리위험이 실제적인 위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더 나은 제도와 기술을 마련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런 성장 전략을 채택해야 인류의 장기적인 번영을 이룰 수 있다.ⓒ Project Syndicate

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