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감원, 옵티머스 경영진 비호 정황…녹취 파일 파문

금감원 조직적으로 비호했나
이헌재 최흥식 등 금융 모피아 개입 정황
김재현 "양호 회장 힘으로 살았다"
"변호사가 이렇게 우호적인 감독원 처음 본다고"
5000억원대 펀드 사기를 벌인 옵티머스자산운용 경영진이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를 들먹이며 금융감독원의 비호를 받은 정황이 담긴 녹취 파일이 공개됐다. 양호 전 나라은행장은 2017년 옵티머스자산운용 회장을 맡으면서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최흥식 당시 금감원장을 만나 모종의 도움을 요청한 정황이 드러났다. 금감원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회생을 지원하면서 이들에 대한 사기 제보는 덮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한국경제신문이 18일 입수한 400여 개 사내전화 녹취 파일에선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초까지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구속 기소)의 경영권 장악 과정에서 금감원의 대주주 승인 및 현장검사 대응방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양 회장에게 금감원 대응 과정을 일일이 보고하고 도움을 받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 대표는 옵티머스 기존 주주에게 "양호 회장이란 분이 이헌재 전 부총리의 친구이자 현 금감원장의 고등학교 선배"라며 "그 분 힘으로 (운용사) 라이센스가 유지되고 있다. 금감원 경영개선 명령 수행 중인데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 금감원 도움받아서 굉장히 우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이 전 부총리와 경기고 동기로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있다. 그는 당시 '이헌재 사단'을 만나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해 10월 말께 당시 최 금감원장과 만난 것으로 파악된다. 최 원장은 이헌재 사단의 핵심인물로 경기고 후배이기도 하다. 그는 비서에게 "내주 금감원에 가는데 VIP 대접해준다고 차번호를 미리 알려달라고 한다"며 "김 대표 차량번호를 문자로 전송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양 회장에게 금감원이 우호적으로 일을 잘 처리해주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해 11월 초 김 대표가 "금감원에서 사후 조치방안을 협의하고 왔는데 그 쪽 이슈는 잘 해결되고 있다"고 말하자, 양 회장은 "월요일 4시에 이헌재 부총리 만나러 가는데 가서 부탁할 필요 없겠네. 사정 봐가면서 해야겠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양 회장이 금감원 부원장 출신인 전홍렬 김앤장 고문을 만나 부탁한 정황도 나왔다. 12월 김앤장의 한 변호사는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전홍렬 고문을 통해 사건 내용을 들었다.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비슷한 시기에 양 회장과의 통화에서 "금감원 변호사가 배석했는데 선임조사역이다.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중략) 금감원 인사가 대거 나는데 저희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한다. 법무법인 변호사가 금감원 건 많이 하는데, 감독원에서 이 정도로 우호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옵티머스 경영진 편에 서서 편향된 입장을 취했다는 사실도 통화 곳곳에서 녹아있다. 양 회장은 법률대리를 맡았던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이규철 변호사(전 최순실 특검보)에게 전화를 걸어 "이혁진이 금감원을 세번이나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빨리 고발해서 정리해달라고 한다. 금감원 직원도 난처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당시 옵티머스 대주주 변경 안건은 자산운용감독실 인허가팀에서, 8~9월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 비리 관련 검사는 금융투자준법검사국 자산운용준법검사2팀에서 맡아 진행했다. 김 대표는 금감원 선임조사역들에게 전화를 걸어 각종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대법원 로비를 시도한 정황도 나온다. 김 대표는 "금감원에서 대법원에서 빨리 결론이 날 수 있도록 해야 심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법원에 로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 고문이 이규철 변호사에게 대륙아주 쪽에 얘기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고, 금감원 변호사도 똑같은 의견이더라. 대법원에게 빨리 해달라고 푸시해야 한다. 금감원에선 대법원 심리불속행 확정시켜주면 진행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당시 옵티머스 사기 제보를 접수했지만 뭉갰다. 이혁진 전 옵티머스운용 대표와 직원들은 2017년 말 펀드 관련 사기 혐의를 상세히 기술해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실에 제보한 데 이어 2018년 2월 자산운용준법검사2팀에도 진정서를 넣었지만 소용 없었다. 당시 진정서에는 옵티머스운용 신규 경영진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의 자금으로 우량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를 설정한 뒤 불법적으로 부실한 사모사채로 자금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한국경제신문은 녹취 파일 관련 양 회장과 이 전 부총리, 최 원장 등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