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으로 변호인-의뢰인 대화내용 확보한 수사기관..."비밀유지권 필요"

검찰 등 수사기관의 법무법인(로펌) 압수수색이 잇따르면서 헌법상 권리인 변호인으로부터 조력을 받을 권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변호사법에 의뢰인과 변호사간 비밀유지권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8일 국회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대한변호사협회 공동 주최로 ‘변호사 비밀유지권 입법토론회’가 개최됐다. 천하람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가 발제를 맡았고 검찰 출신 이영상 대한변협 제2법제이사와 임서경 법원행정처 서기관, 윤성훈 법무부 서기관, 박사라 중앙일보 기자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이날 토론회는 검찰의 과도한 수사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 속에 출발했다. 수사기관이 로펌을 압수수색하거나 사실상의 강제취득인 임의제출 형식으로 의뢰인과 변호사간 상의 내용을 확보, 이를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하람 변호사는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밀접한 신뢰관계가 형성되려면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완전하고 진솔하게 의사교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보장돼야 하다”며 “의뢰인이 변호사와 한 의사교환이나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제공한 자료 등의 정보가 추후에 공개돼 불이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배제되지 않고서는 유효하게 보장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수치스러운 질병을 치료받았다는 사실이 의사를 통해 외부로 쉽사리 알려질 위험성이 있다면 치료를 받기가 꺼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덧붙였다.대한변협이 지난해 4월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로펌 압수수색을 통해 피의자와의 문자메시지 및 카카오톡 대화내역, 상담일지, 의뢰인 방어를 위한 변호인의 의견서 등을 확보한 사례가 있었다. 비밀유지를 침해한 기관으로는 검찰이 37.7%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고, 이어 경찰(18.9%) 국세청(9.4%) 금융감독원(7.5%) 등 순서였다.

법조계에선 변호사법에 비밀유지권이 명문화돼있지 않은 현실을 문제의 원인으로 꼽는다. 조응천 의원은 ‘직무와 관련해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리에 이뤄진 의사교환 내용 등에 대해 누구든지 공개, 제출 또는 열람할 것을 요구해선 안된다’ 등 조항을 신설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 비밀유지권이 보장되고 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