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기 속에 더 빛나는 한국 기업들의 과감한 미래 투자

한국의 간판 기업들이 코로나19 확산 와중에도 시장 선점을 위한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올 들어 대규모 투자는 아마존 등 일부 전자상거래 업체와 바이오·제약 등 코로나 시대에 더 각광받는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일이다. 사실상 우리 기업들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글로벌 경쟁사들도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삼성그룹은 상반기 시설투자 17조1000억원, 연구개발(R&D) 투자 10조5800억원 등 약 28조원을 투자했다. 지난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조7400억원을 들여 인천 송도에 네 번째 공장을 세우기로 하는 등 과감한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면 2년 전 그룹 차원에서 발표한 투자목표 180조원 달성이 무난해 보인다. 이런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최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1위인 대만 TSMC를 누르고 IBM의 최첨단 중앙처리장치(CPU)를 수주하는 쾌거를 올렸다.현대자동차는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을 독립시켜 2024년까지 전기차 라인업을 갖추기로 했다. 러시아 GM공장 인수도 추진 중이다. SK와 LG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명운을 건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한화의 미 수소차업체 니콜라에 대한 투자도 주목된다. 단순 지분투자가 아니라 미국 내 수소 충전인프라 구축·운영의 발판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도 반(反)기업정서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선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폄훼하는 시각이 없지 않다. 일각에선 삼성의 투자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의 기소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난한다. 이는 기업 투자의 본질을 외면한 단견일 뿐이다. 혁신을 강조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기업가의 주요 임무이자 정신”이라고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투자야말로 기업가 정신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 덕에 우리 경제는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정부가 기업 투자를 적극 지원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규제개혁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 규제개혁 성과에 만족하는 기업은 전체의 8.3%에 그쳤다. 최우선 개혁 분야로는 여전히 노동규제(41.8%), 환경·에너지 규제(26.4%) 등을 꼽았다. 게다가 정부·여당은 투자의 발목을 잡을 게 확실시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이 투자해야 제대로 된 일자리가 생기고, 성장잠재력을 키워 고착화하는 저성장 기조를 반전시킬 힘이 생긴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골몰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만 있고 다른 나라에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