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근의 법과 법정] 비판이 두려워 판결문 공개 안 한다는 오해

법 해석 통해 법률 내용 보충하는 판결
접근하기 쉬워야 재판의 정당성도 확보
개인정보보호라는 어려움은 해소돼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언젠가 존경할 만한 법학교수님으로부터 판결문(또는 판결서)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판사들이 자기 판결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하기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판결문에 대해서는 패소 당사자나 대리인, 항소심 대리인, 피고인, 검사, 변호인, 상급심 법관 등 매우 꼼꼼하고 심지어 공격적이기까지 한 비판적 독자들이 존재한다. 판사가 비판을 두려워해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하도록 명하고 있다(헌법 제109조 본문). 예외적으로 심리를 비공개할 수 있지만 판결은 예외조항도 없다(같은 조문 단서). 판결은 본래 구체적인 사건에 관해 당사자(민사 사건이라면 원고와 피고, 형사 사건이라면 검사와 피고인)가 최선을 다해 제시하는 주장과 입증에 대해 법원이 심리를 마친 뒤 도달하게 된 결론을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당사자들에게 법원이 재판의 결론을 서면으로 정리해 보고하는 것이다. 이점에 한해 보면 당사자 아닌 제3자에게 판결을 공개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그러나 판결은 그 밖에도 상급심에서 중요한 기초자료가 되고, 판결의 효력 범위를 확정하는 근거가 되는 등 국가의 사법 작용과 관련해 여러 기능을 한다. 한편 법률은 추상적 일반적으로 제정될 수밖에 없는데, 판결은 법 해석을 통해 법률 내용을 보충하고 구체화해서 변화하는 법 현실에 맞도록 법의 규범력을 유지시켜주는 기능도 한다. 이런 기능은 보다 공적인 기능이며 당사자 아닌 제3자에게도 이해관계가 있다.

일찍이 제임스 메디슨은 무엇이 법인지 국민이 알 수 없다면 국민이 대표를 통해 법을 제정한다고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지적한 바 있다. 영미법 국가에서는 판결에 포함된 판시 사항이 곧 법이므로 판결 공개는 법을 공표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영미법 국가와 달리 판결이 곧 법을 형성하지는 않지만 법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다른 사람의 신체에 대해 폭행이나 상해를 가하면’ 일반적인 폭행이나 상해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도록 형벌 법규에 규정돼 있다. 법률은 ‘위험한 물건’을 일일이 나열하고 있지 않으므로 죽도(竹刀)나 각목이 위험한 물건인지는 조문 해석의 문제에 해당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휴대’에 해당하는지 역시 해석이 필요하다. 이렇듯 법조문의 적용 여부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법원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결국 법원의 해석은 법의 빈틈을 메워주고 보완하며, 이런 면에서 국민은 법의 내용을 알 권리가 있는 것처럼 판결의 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재판이 실질적으로 공개되고,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정보에 기초해 건강한 ‘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사법기능이나 재판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판결 내용에 대한 국민의 손쉬운 접근과 이해를 보장한다는 것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내용이 뭔지 알아야 국민이 찬성이든 반대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고 주권 행사를 통해 법을 개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판결문에 공개하기 어려운 정보가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구체적인 범죄 수법이 기재된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은 범죄 피해자 등에게 2차적 피해를 유발한다. 그 밖에도 민감한 개인정보, 기업 비밀, 외교나 국방상 비밀 등이 포함된 판결문도 있을 수 있다. 한쪽 당사자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판결문의 비공개를 원하지만 상대편 당사자는 침해된 권리의 실질적 회복을 위해 판결문 공개를 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법원은 판결문을 더 많이 공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사전에 개인정보 보호조치(비실명처리)를 거쳐야 하는 등 여러 현실적 제약이 있고 그 결과 공개율이 저조한 실정이다. 당사자가 여럿인 경우 비실명화된 판결문은 암호문을 연상시키며 읽기도 매우 어렵다.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법에서 판결문은 예외를 인정해 폭넓게 전면 공개를 허용하되 필요한 경우 직권으로 또는 당사자 신청을 거쳐 비공개를 결정하도록 하는 등 이 문제에 대한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