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철 제넥신 회장 "감염병 R&D에 써달라"…포스텍에 100억 '쾌척'

바이오계 '소문난 기부왕'

'SL기금' 조성해 바이오 육성
지금까지 대학 등에 700억 기부

"회사 지분보다 경영능력이 더 중요
이익 나면 사회 환원 지속할 것"
포스텍에 100억원을 기부한 성영철 제넥신 회장 (오른쪽)과 이옥희 여사 부부. /포스텍 제공
“제게 기부는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제넥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의미가 있죠.”

성영철 제넥신 회장 겸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20일 포스텍에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 100억원어치를 기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에 올지 모르는 신종 전염병 유행에 대비하기 위한 연구인력 양성에 써달라는 취지에서다.포스텍은 이 돈으로 ‘SL(Saving Life)기금’을 조성한다. 헬스케어 융합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우수 인재 유치, 바이오벤처 육성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성 회장은 “SL기금이 수많은 위험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주춧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바이오업계에 소문난 ‘기부왕’이다. 지금까지 대학, 학회, 병원 등에 기부한 금액만 700억원이 넘는다.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2018년 모교인 연세대에도 320억원을 기부했다. 연세대는 이 기부금으로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 연면적 1만127㎡ 규모의 에스엘바이젠산학협력관을 지난 4월 열었다. 성 회장은 지난해에는 국제백신연구소(IVI)에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위한 백신 접종 사업과 신종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돕고자 100억원을 쾌척했다. 2018년에는 가톨릭중앙의료원에도 100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제넥신은 없었을 것”이라며 “빚을 갚으면서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성 회장이 기부에 열심인 데는 남다른 경영철학이 깔려 있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성 회장의 지분율은 2014년 20%에서 지난 6월 기준 9%대로 떨어졌다. 그는 “경영권은 경영을 잘하는 사람의 권리”라며 “능력이 뛰어나면 많은 지분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는 게 소신”이라고 했다. 그는 “회사 돈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써야 한다”면서도 “회사도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익이 충분히 남는다면 주주 동의를 받아 사회에 환원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는 바이오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도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포스텍이 2018년 출범시킨 535억원 규모의 벤처지원펀드는 성 회장이 기부한 100억원이 밑거름이 됐다. 유망한 바이오벤처를 키우는 산실이 되겠다는 계획도 차츰 결실을 맺고 있다. 2014년 제넥신의 면역항암 기술을 가지고 스핀오프한 네오이뮨텍은 올해 코스닥시장 상장을 추진 중이다. 장명호 지아이이노베이션 대표도 제넥신 출신이다. 에스엘바이젠, 에스엘백시젠 등 바이오벤처에도 자본을 투자하고 연구개발을 지원해왔다.

성 회장은 “바이오산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을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며 “유능한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나선 것도 공익을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성 회장은 “돈을 벌려고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며 “신약을 개발하는 사람으로서 현재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기여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