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트럼프의 화웨이 때리기, 삼성전자에 득일까 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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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동의 3분IT]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벼랑 끝에 섰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겨냥한 '끝판왕' 제재를 발표하면서다. 현실적으로 이제 어떤 업체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기가 어려워졌고, 화웨이는 미국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반도체를 구하지 않으면 조만간 스마트폰, 통신장비 생산라인을 멈춰야 한다. 전문가들은 미 정부의 이 같은 제재가 당장 화웨이와 '프레너미(frienemy, 동업자이자 경쟁자)' 관계에 있는 삼성전자에 득보다는 실이 더 높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반도체 조달 통로 완전히 끊긴 화웨이
삼성, 화웨이와 '프레너미(Frienemy)' 관계
반도체 '고객' 잃은 게 클까, 스마트폰 반사이익 클까
작년 1차 제재, 삼성 스마트폰 반사이익 크지 않아
삼성 치고나가는 5G 통신장비 시장도 올해 투자 더뎌
반도체 조달 통로 완전히 끊긴 화웨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그동안의 제재보다 더 센 중국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발표의 요지는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로 반도체를 반드는 그 어떠한 기업도 화웨이에 제품을 납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화웨이는 이제 미국의 지적재산권이 들어가지 않은 반도체를 찾아야 하는 셈이 됐다.그동안 화웨이는 '우회로'를 통해 반도체를 공급받아 왔다. 지난해 5월 미 상무부의 1차 제재안은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미국 업체는 미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 같은 한국 기업은 이 제재에 해당하지 않아 화웨이에 반도체를 팔 수 있었다. 2차 제재안은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에 미국의 기술이 사용돼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화웨이가 그동안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설계한 반도체 도면을 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인 대만 TSMC에 맡겨 제품을 생산해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제재는 정확히 TSMC를 겨냥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TSMC는 이 제재 발표 이후 곧바로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며 '두 손'을 들었다.이번 3차 제재안은 '화웨이가 설계한'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즉 화웨이가 설계하지 않은 반도체에 대해서도 미국의 기술과 장비가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 TSMC, 네덜란드 ASML 등 미국 외의 글로벌 반도체 제조 회사들이 모두 미국 기술 없이는 반도체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다. 화웨이라는 '손님'을 잡기 위해 미국 장비와 특허를 모두 사용하지 않고 반도체를 만들기는 이 산업의 특성상 쉽지 않다.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이제 어떤 업체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삼성, 화웨이와 동료이자 적
문제는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화웨이의 구매력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큰 손' 중의 큰 손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액은 208억달러(약 24조8000억원)로 애플(361억달러)과 삼성전자(334억달러)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그동안 화웨이를 'VIP 고객'으로 삼아온 삼성전자 입장에선 당장 주요 손님을 잃게 생겼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반기사업보고서를 보면 1~6월 삼성전자 매출에 기여한 글로벌 5대 기업에 화웨이가 애플, 도이치텔레콤, 버라이즌, 홍콩 테크트로닉스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올 상반기 이들 5대 고객사가 차지한 매출 비중만 전체의 12%에 달한다. 이중 화웨이의 비중이 3.1%가량으로 추산된다. 금액으로 치면 약 3조원 안팎에 달하는 규모다.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반도체를 많이 사가는 큰 손의 손발이 묶이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당장 올 하반기 반도체 수요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고 했다.반면 화웨이와 경쟁 관계에 있는 스마트폰 사업에선 어느 정도 수혜가 예상되지만 이 같은 반사이익이 반도체에서 얻는 수익을 뛰어넘을지는 미지수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미 상무부의 이 같은 제재 조치로 올 한 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이 약 25%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삼성전자와 화웨이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경쟁하고 있는 곳을 지역별로 보면 중국, 유럽, 중남미 등이다. 이들 지역의 소비자가 화웨이 폰을 구매하지 못할 경우 대안으로 삼성폰을 택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지난 1분기 기준 유럽(점유율 삼성 28%, 화웨이 15%)과 중남미(삼성 39%, 화웨이 14%) 등 두 회사의 경쟁이 첨예한 곳에선 일부 점유율 상승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 시장에서 '갤럭시 파워'는 크지 않다. 중국 소비자들 10명 중 9명은 중국 브랜드를 쓴다. 중국통신원의 '2020년 7월 중국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전체 휴대전화 시장에서 중국산 브랜드 휴대전화 출하량은 2072만4000대로 전체 출하량의 92.9%를 차지했다. 1~7월 누적 기준으로는 1억6000만대로 91.2% 였다. 화웨이, 비보(vivo), 오포(OPPO), 샤오미 등 기업이 상위를 차지했다.
중국 리서치회사인 시노리서치(CINNO Research)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 시장 스마트폰 브랜드 판매량 순위에서 삼성전자는 7위를 기록했다. 1.2%의 점유율이다. 지난해 점유율 1.5% 대비 0.3%P 낮아졌다. 판매량으로 치면 170만대 수준이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중국 시장에선 화웨이 스마트폰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경우 '비보'나 '오포' 등의 수혜가 가장 크다"고 했다. 여기에 최근 중국 내에서 미 정부 제재에 반발해 '애국 소비'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폰이 대안이 될 가능성이 떨어진다.변수는 스마트폰처럼 두 회사가 경쟁관계에 있는 5G 통신장비 시장이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화웨이(26.18%) △에릭슨(23.41%) △삼성전자(23.33%) △노키아(16.64%) △ZTE(7.53%) 순이었다. 미 정부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화웨이는 저가 수주 전략으로 점유율을 지켰다. 업계에선 만약 미국의 제재가 없었다면 화웨이의 점유율이 50% 이상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화웨이의 5G 통신장비에도 반도체가 탑재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미 정부의 추가 제재는 화웨이의 본업인 통신장비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화웨이는 현재 중국 내 반도체 기업인 SMIC을 통해 통신장비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생산을 테스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삼성전자가 수혜를 볼 만큼 5G 통신장비시장 절대 규모가 크지 않다. 지난해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매출액은 5조원 안팎이다. 가뜩이나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에 전세계 5G 통신망 투자가 더딜 것으로 보여 시장규모도 지난해의 80% 수준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