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코로나가 위장된 축복 되려면

이심기 산업부장
기업의 빛나는 성공 이면에는 흑역사가 등장한다. 마치 성공의 조건인 양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붙으며 드라마틱한 반전을 돋보이게 만든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퍼스트 무버’에겐 보고 따라할 ‘모범 답안’이 없다. 숱한 시행착오와 실패의 연속은 필연적이다.

한국의 ‘동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미국 기업 주식 1, 2위에 오른 테슬라와 아마존도 창업 후 성공가도만 내달린 건 아니다. 2018년 테슬라는 창업주 일론 머스크의 말대로 ‘생산 지옥’에 빠졌다. 한 주에 5000대를 생산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하루에 3대를 만드는 데 그쳤다. 그나마 불완전한 차체, 운영체제 오작동 등 도처에 결함투성이였다. 적자 누적으로 현금은 말라갔고,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들은 회사채 등급을 정크본드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지금은 기업가치가 3820억달러(약 454조원)로 도요타와 제너럴모터스(GM)의 시가총액을 더해도 테슬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한때 디폴트 우려까지 제기됐다.

테슬라와 아마존의 흑역사

아마존도 다르지 않다. 1994년 7월 설립 후 거의 10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1997년 기업공개 후 적자가 쌓이는 와중에도 무자비한 초저가 전략으로 출혈경쟁을 벌였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2001년 지속불가능한 사업 구조라며 아마존은 1년 내에 파산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낼 정도였다. 하지만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는 ‘의도된 적자’라고 밀어붙였고 승자독식을 만끽하고 있다.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바이오, 2차전지 사업을 주도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한때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올해 공모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SK바이오팜은 2008년 그룹 내부에서 신약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회의론까지 제기됐다. 10여 년간 공을 들여 기술 수출한 뇌전증치료제가 미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허가를 받는 데 실패하면서다.

1993년 최종현 SK 회장이 ‘P프로젝트팀’을 꾸리면서 시작한 신약사업이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다. 아들인 최태원 회장은 사업을 접는 대신 미국 연구개발(R&D)센터에 전문가를 보강해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렇게 SK의 ‘신약 신화’는 계속될 수 있었다.

창업주의 집념이 좌우한 신사업

올해 세계 시장 1위에 오른 LG화학 2차전지 사업도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건너야 했다.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사업 진출을 결정했지만 성공을 기약할 수 없었다. 누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2011년 11월 그룹 최고회의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돈을 쏟아부을 순 없다.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건의까지 나왔지만 구 회장은 “길게 봐야 한다”며 반대를 물리쳤다.

삼성SDI의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10년이나 뒤처졌지만, 끊임없는 R&D와 과감한 투자로 단숨에 경쟁사를 앞지르는 ‘퀀텀 점프’ 전략으로 글로벌 주자로 올라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뚝심이 없었다면 감행하기 어려운 모험이었다. 이렇듯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들의 사운을 건 신수종 사업은 오랜 적자와 불확실성을 넘으며 뿌리를 내렸다.

코로나19로 글로벌 산업계 지도가 180도 바뀌고 있다. 확실한 건 준비된 기업엔 코로나19가 ‘위장된 축복’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승자독식의 ‘퍼스트 무버’가 누리는 달콤한 열매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이 없으면 열리지 않는 법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승자 경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