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의 Fin 토크] 3년 전 네이버가 당했다는 역차별

임현우 금융부 기자
“모든 기업이 동등한 상황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시장의 룰’은 당연한 요청이다.”

2017년 11월 네이버가 구글에 보낸 공개 질의서에 나오는 표현이다. 한성숙 대표 명의로 작성된 A4용지 6장 분량의 문서에는 정보기술(IT) 분야의 ‘규제 역차별’로 토종 인터넷 기업이 외국계와 경쟁하기 힘들다는 호소가 절절하게 담겼다. 구글을 향해 “세금도, 망 사용료도 안 낸다는 의혹을 해명하라”고도 했다.

국내 간판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의 ‘작심 저격’은 당시 IT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어지간한 비판엔 꿈쩍도 하지 않던 구글이 “국내 법을 모두 지키고 있다”고 발끈했을 정도다.

3년 전 역차별 논쟁에 불을 지폈던 네이버가 요즘 전혀 다른 영역에서, 또 다른 역차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금융업 진출에 나선 네이버에 대해 기존 금융회사들이 “규제 역차별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성토하면서다. 이들의 논리는 3년 전 네이버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동등한 상황에서 경쟁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 네이버

네이버는 지난해 금융 계열사 네이버파이낸셜을 세우고 간편결제 서비스인 ‘네이버페이’를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통장, 소상공인 대출상품 등을 내놨고 내년엔 자동차보험 견적비교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논란은 네이버가 ‘플랫폼 중개업자’ 지위로만 사업을 벌인다는 데서 불거졌다. 현행법상 전자금융업자인 네이버는 직접 예금을 받거나 대출할 수 없다. 네이버는 미래에셋 등과 제휴해 상품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해간다는 게 금융인들의 주장이다. 네이버와 같은 빅테크(대형 인터넷 기업)지만 은행 사업권을 받고 영업하는 카카오에는 금융권의 반감이 덜한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사들은 네이버의 강력한 ‘플랫폼 장악력’에 시장을 잠식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네이버페이의 성장세를 보면 이런 걱정이 기우만은 아니다. 시장정보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네이버 내 결제액은 2018년 14조원, 2019년 19조원, 올해는 상반기에만 12조원을 넘었다.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는 이런 지적에 대해 “우리보다 은행까지 만든 카카오를 더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만난 여러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금융업에 들어오지 말라는 게 아니다. 카카오처럼 정식 라이선스(사업권)를 받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라는 것이다.”

핀테크 시대의 경쟁 규칙 필요

금융은 모든 산업 중에서도 당국의 가장 강력한 규제를 받는 업종이다. ‘남의 돈’을 맡아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혁신금융’ 기조에 맞춰 핀테크 스타트업에는 규제 완화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많이 줬다. 금융사들은 스타트업이 혜택 보는 것은 납득하고 넘겼지만, 빅테크가 수혜자가 되는 것은 참지 못하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은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도 규제가 많아 쉽지 않다.

금융권의 불만을 ‘밥그릇 욕심’으로 보기만도 어려운 면이 있다. 핀테크 기업들은 금융 사고가 터지면 늘 “우리는 중개만 했다”고 피해갔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벌써부터 ‘수수료 욕심’을 드러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자동차보험 견적비교를 준비하면서 보험사에 광고비 명목으로 보험료의 11%를 요구하려 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떠넘겨질 것이다.금융위원회는 하반기에 금융사, 빅테크,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빅테크 협의체’를 꾸려 규제 역차별의 해법을 모색한다는 구상이다. 전자금융법도 14년 만에 전면 개정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핀테크 시대에 맞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금융사나 빅테크,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낡디낡은 한국 금융의 규제 틀을 새로 짜는 계기가 돼야 한다. 금융과 IT의 결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애플 신용카드’나 ‘구글페이’는 언젠가 한국 시장도 넘볼 것이다. 그때 또 토종과 외국계 간의 역차별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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