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두번의 실패는 없다 슬기로운 재택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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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하며 '확찐자' 됐던 나, 이젠 '홈트족' 변신
넷플릭스 중독될라…전자책으로 갈아탔죠
재택근무 시즌2 시작
회사로 돌아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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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재택근무를 하게 된 김과장 이대리. 이번에는 ‘시즌1’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을 새긴다. 처음 재택근무를 할 땐 허투루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업무와 삶이 구분되지 않아 허둥지둥했다. 과거 시행착오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기로 다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재택근무는 익숙하지 않다. 말만 재택근무일 뿐 회사 모임에 불려가기도 한다. 김과장 이대리의 재택근무 ‘천태만상’을 살펴봤다.
홈트 하고 다이어트 식단으로 바꾸고
재택근무를 시작한 김과장 이대리들은 집에서 근무하는 것이 마냥 나쁘지 않다. 출퇴근 시간을 아껴 자기관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경기 판교의 한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개발자 신모씨는 온라인 쇼핑으로 ‘홈트(홈 트레이닝)’ 기구를 샀다. 전신운동이 가능한 ‘로잉머신’이다. 재택근무 지시가 이달 중순 내려오자마자 운동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3~4월 재택근무했을 때 ‘확찐자’가 된 경험이 있어서다.
신씨는 당시 재택근무로 인해 활동량이 확 줄었다. 경기 용인 집에서 판교 회사까지 40분 정도 걸리는데,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자 몸무게가 확 늘었다. 업무를 할 때도 활동량이 감소했다. 일을 집 소파에서 주로 한 영향이다. TV를 틀어 놓고 컴퓨터로 일을 봤다. 밥도 소파에서 배달음식을 먹었다. ‘퇴근’ 후에도 집을 나가지 않아 별다른 외부활동이 없었다. 신씨는 한 달 만에 3㎏이나 몸무게가 늘었다. 그는 “이번에는 틈틈이 운동하면서 일하려고 결심했다”고 했다.대기업에 다니는 나 대리도 운동을 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탓에 체육관 가는 것이 꺼려지는 그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 센터로 필라테스 강사를 불렀다. 이곳에서 주 3회, 점심시간에 운동을 한다. 나 대리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개인 트레이닝(PT)을 하는 재택 회사원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통신사에 다니는 권모 과장은 식단 조절로 살을 빼기로 작정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샐러드, 닭가슴살, 곤약 등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만한 음식 1주일치를 주문했다. 권 과장 같은 사람이 많아 요즘 온라인 쇼핑몰은 다양한 다이어트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아예 하루 단위로 메뉴를 정해 놓고 선택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는 “회사에선 간식거리가 많아 직원들만 모이면 주전부리를 자주 먹었다”며 “이번 재택근무를 기회 삼아 식습관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넷플릭스 끊고 책 봐요”
재택근무로 늘어난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직장인도 많다. 서울 강서구의 한 연구소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 그는 최근 ‘밀리의서재’ 구독 신청을 했다. 월정액만 내면 전자책을 맘껏 볼 수 있는 서비스다. 인문,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책을 읽은 뒤 토론도 한다. 대신 끊은 서비스도 있다. 넷플릭스다. “너무 재미있어서 끊었다”고 한다. 재택근무를 하며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통제가 안 돼 아예 안 보기로 한 것이다. 김 과장은 “넷플릭스는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가 없다”며 “재택근무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라고 했다.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재택근무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 유통사에 근무하는 이모 과장은 요즘 네 살 난 딸과 부쩍 친해졌다. 맞벌이를 하는 이 과장은 원래 어린이집에 오후 7시까지 아이를 맡겼다. 요즘은 오후 1시면 아이를 데려온다. 손은 많이 가지만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만족한다.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전남 나주의 한 공기업에 다니는 안모씨는 대학생 때 입양한 반려동물을 부모님 집에서 데려와 다시 기르고 있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외로움을 느낄 강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나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강아지를 안고 업무를 할 수도 있고, 점심시간 동안 함께 집 주변을 산책하는 등 강아지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안씨는 “쏟아지는 업무에 지치는 순간, 책상 옆에 누워 있는 ‘댕댕이(멍멍이를 가리키는 말)’를 보면 피로가 가신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는 말뿐…일만 더 늘었죠
재택근무가 달갑지 않은 직장인도 있다.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2년차 사원 이모씨는 “차라리 회사가 더 낫다”고 하소연한다. 메신저를 통해 지시를 받으면서 업무량만 증가한 영향이다. 이씨는 “회사에서는 이동시간이나 점심시간을 핑계로라도 쉴 수 있지만 집에서는 잠깐이라도 화장실을 다녀오면 ‘왜 메신저에 즉답하지 않냐’는 질책이 쏟아진다”고 했다. 중소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하는 박모 대리 처지도 마찬가지다. 그는 “팀장이 전화를 걸어올 때 신호음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받지 않으면 ‘근태 불량’으로 기록된다”며 “이럴 바엔 출근하는 게 더 낫다”고 하소연했다.말만 재택근무일 뿐, 몸은 여전히 회사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제조기업에 다니는 박모 대리는 며칠 전부터 ‘반출근’ 상태다. 박 대리가 속한 팀은 대외적으론 재택근무 중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팀원이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 관리 부서에서 각 팀에 자율적으로 재택근무를 결정하라는 공지가 내려오자 팀장이 “중요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엔 팀원들이 되도록 모여 있는 게 좋은데…”라며 대놓고 출근 압박을 준 것. 박 대리는 “‘자율 재택’ 시행 이틀 만에 결국 팀원 모두가 회사로 출근했다”며 “회사가 아예 방침을 정해줬다면 혼선이라도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재택근무는 ‘언감생심’인 곳도 있다. 중소기업 대부분이 그렇다. 중소기업 직장인에겐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시화공단의 한 중소 제조사에 다니는 강모 대리는 업무 시간 틈틈이 탕비실을 찾는다. 집에는 없는 고급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요즘 일상의 낙이다. 탕비실 한 쪽에 마련된 안마의자도 마음껏 이용한다. 강 대리는 “코로나19가 다시 퍼지면서 다른 회사들처럼 재택근무도 하지 않는데, 회사에 구비된 편의시설이라도 실컷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