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시총 세계 1위 엑슨, 美 다우지수서 퇴출…IT·바이오에 밀렸다

저유가 장기화에 주가 40% 추락
100여년 만에 '공식 우량주' 반납
화이자·레이시온도 다우서 퇴출

클라우드社 세일즈포스 신규 편입
S&P "현재 美 경제여건 고려했다"
미국 내 IT·바이오 기업 위상 반영
‘세계에서 가장 덩치 큰 기업’, ‘미국의 희망’. 약 10년 전 미국 에너지기업 엑슨모빌을 두고 나온 얘기다. 엑슨모빌은 2008년 말엔 세계 시가총액 1위였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2020년 8월 24일(현지시간). 엑슨모빌은 미국 증시 ‘공식 우량주’ 이름표를 박탈당했다. 30개 대표 종목으로 구성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에서 퇴출되면서다. 같은 날 S&P500과 나스닥종합지수는 정보기술(IT)과 제약·바이오분야 랠리를 타고 각각 역대 최고점을 경신했다.

엑슨 대신 세일즈포스…다우지수 개편

이날 S&P 다우지수위원회는 다우지수 종목 교체를 발표했다. 엑슨모빌과 제약기업 화이자, 방산기업 레이시언테크놀로지 등 세 기업을 빼고 클라우드소프트웨어 기업인 세일즈포스, 바이오제약사 암젠, 방산·항공우주기업인 허니웰을 추가했다. 종목 교체는 오는 31일 이뤄진다. 세 개 종목이 한 번에 바뀐 것은 2013년 이후 처음이다.

다우지수는 미국 증시 3대 지수 중 하나다. 위원회가 기업 규모, 신용도, 성장지속성, 산업 내 대표성 등을 고려해 30개 기업을 선정한다. 다우지수 산정을 시작한 1884년 이후 구성 종목은 55번 바뀌었다. 2018년 제너럴일렉트릭(GE)을 퇴출하고 제약유통기업 월그린스를 포함시킨 게 최근 변동 건이다.

위원회는 “미국 경제 여건을 보다 잘 반영하기 위해 구성을 바꿨다”고 밝혔다. 시총 1위인 애플이 31일 주식 액면분할에 나서는 여파다. 기업 시총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는 다른 주요 지수와 달리 다우지수는 기업별 주가대로 비중을 잡는다. 이 때문에 애플이 4 대 1 액면분할에 들어갈 경우 애플의 다우지수 내 비중도 기존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IT 기업 위주의 증시 상승 국면을 다른 주가지수에 비해 덜 반영하게 된다는 얘기다. S&P다우존스에서 지수를 담당하는 하워드 실버블랫 선임 애널리스트는 “세일즈포스가 다우지수에 새로 편입되면 애플로 인해 줄어든 지수 내 IT 업종 비중이 일부 보정된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지고, 바이오 뜨는 시대”

이번 결정으로 엑슨모빌은 100여 년 만에 다우지수 명단에서 쫓겨났다. 엑슨모빌은 1928년 다우지수가 구성 종목을 기존 12개에서 30개로 늘리면서 스탠더드오일이란 종목명으로 지수에 편입됐다. 엑슨모빌의 퇴출은 시대 변화를 반영했다는 평가다. IT, 바이오, 금융, 유통 등에 비해 에너지 분야가 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줄었다는 얘기다. 이제 다우지수에 남은 ‘전통 분야’ 기업은 보잉(제조), 캐터필러(건설), 셰브런(에너지) 정도다.

엑슨모빌은 최근 몇 년간 쇠퇴하고 있다. 2014년 중순 4460억달러에 달했던 시총은 1800억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저유가세 장기화에다 정제 마진이 하락해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다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배출 규제에 나서면서 신규 사업이 어려워졌다. 최근엔 코로나19 여파로 에너지 수요 장기 전망도 크게 꺾였다. 올 들어 엑슨모빌 주가는 40% 가까이 추락했다.

반면 새로 진입한 기업들은 시대 흐름을 잘 타 승승장구하고 있다. 세일즈포스는 코로나19 이후 주가 상승세가 뚜렷하다. 비대면 시대를 맞아 고객 관리 소프트웨어 수요가 크게 늘었다. 화이자와 암젠, 레이시언과 허니웰의 위치가 각각 갈린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업종은 서로 비슷하지만 사업 내용이 크게 다르다. 화이자는 전통 제약기업에 가까운 반면 암젠은 2000년대 이전부터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서 발을 크게 넓혔다. 허니웰은 방산기업이면서도 양자컴퓨팅 기술 투자를 크게 늘려 요즘엔 분야 선도 기업으로 꼽힌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