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셋값을 세입자가 정하게 하는 황당·졸속 임대차법

전셋값 인상률을 연 5% 이내로 제한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을 둘러싸고 정부 해석이 달라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전·월세상한제에서도 임대인은 5% 안에서 전셋값을 올릴 수 있다고 밝혀왔지만, 국토교통부가 “5% 내에서 올리더라도 임차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임대차법을 달리 해석한 것이다. 법 시행 한 달도 안 돼 정부 입장이 180도 뒤바뀐 것이나 다름없다. 국토부는 또 ‘임차인이 증액 청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꼭 5%를 증액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는 세입자(임차인)에게 사실상 전·월세 가격 결정권을 주는 셈이어서, 임대인 권리를 완전히 무시한 황당한 입법이란 비판이 나온다.

문제의 원인은 거대 여당이 국회 법안 상정부터 시행까지 이틀 만에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면서 임대인 권리 조문을 빼먹은 데 있다. 임대차법 7조에 ‘증액 청구는 약정한 차임(임대료)이나 보증금의 5% 금액을 초과하지 못한다’는 단서조항을 두면서 ‘임차인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문은 넣지 않아 의무가 아닌, 임의 규정이 된 것이다.이는 투기세력의 시장교란 행위가 극심하다며 민주당이 상임위에서 대체토론, 소위 회부 및 심사, 법 조문을 따지는 축조심사 등을 모두 건너뛴 데 따른 ‘예고된 참사’다. 이게 단순한 ‘입법 사고’가 아니라면 문제는 더 커진다. 애초에 이런 해석이 내려질 줄 예상하고 임대인의 권리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대차법을 추후 보완하더라도 법 재개정 때까지 전국에서 터져나올 임차인과 임대인 간 갈등이 걱정이다. 세입자가 전·월셋값 인상을 거부하면 집주인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찾거나 소송을 걸어야 하지만, 조정은 강제력이 없고 소송은 시간·비용부담에다 결과도 알 수 없다. 최소 수개월간 전·월세 계약을 둘러싼 법적 안정성이 심각히 훼손되고, 국민의 권리·의무 관계가 공중에 붕 뜨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적정한 인상률로 합의할 것으로 본다”며 안이한 반응을 보인다. 여당이든 정부든 책임을 통감하며 대책을 마련해야지,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20대 국회에서도 졸속·황당·과잉 입법이 판쳤는데, 거대 여당이 들어선 21대 국회에선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다. 176석을 앞세워 힘자랑하는 거대 여당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