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이마트 부활의 전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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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라는 브랜드는 영문 ‘e’와 ‘mart’의 조합이다. ‘e’는 경제적(economic)으로, 매일(everyday), 쉬운(easy) 쇼핑을 뜻한다. 월마트가 미국 땅에서 그랬듯이 이마트는 한국형 할인점 시대를 열며 소매 유통 시장을 혁신했다. 이마트가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건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다. 1993년 첫 선을 보였던 사명 그대로다.
이마트의 혁신은 원조를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했다. 까르푸코리아에 이어 2006년 월마트코리아를 인수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필자는 이마트 등 유통업체를 담당하는 초임 기자였다. 그때의 뉴스를 다룬 기사들은 대체로 이런 톤이었다. “한국 실정 몰랐던 월마트의 참패”. 월마트가 놓친 건 한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의 소비 패턴이었다. 미국처럼 한적한 교외에 창고형 매장을 만들어 놓으면 한국의 중산층들이 알아서 찾아와 소비해 줄 것으로 믿었다.
이마트는 ‘토종’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주거지 배후에 차례로 점포를 냈다. 주부들이 마치 동네 시장에 가듯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필자도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이마트 2층에 있는 놀이시설에 ‘출근 도장’을 찍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마트는 재래 시장의 활기를 구현한 곳이자 새로운 휴게, 놀이 공간이었다. 월마트를 인수한 이후 이마트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경쟁자들의 등장이 주마가편이 됐다. 경쟁은 시장을 키웠고, 대형 할인점들은 과실을 만끽했다.‘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공식은 이마트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가가 증명한다. 3년 전쯤 30만원을 웃돌던 이마트 주가는 요즘 10만원 언저리에서 맴돈다. 3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이마트 주가의 추락은 사실 예고된 불행이었다. 이마트 속 ‘e’에는 ‘전자(electronic) 상거래’가 빠져 있었다. 세상은 ‘이커머스’의 시대로 변하고 있었지만 이마트는 그 변화의 속도를 거부했다. 이마트가 속한 신세계그룹은 여전히 오프라인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신세계는 백화점을 모태로 삼고 있는 그룹이다. 백화점은 본질적으로 부동산 임대업이나 마찬가지다. 백화점 임원들은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런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백화점은 돌멩이를 가져다 놔도 팔리는 곳이다”
도전자들의 펀치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마트를 보신주의에 빠지게 했다. SK그룹이 11번가를 설립하고, 기존의 옥션, G마켓, 위메프, 티켓몬스터 등 이커머스의 새로운 강자들이 도전했지만 이마트의 아성을 허물기엔 부족했다. ‘앙시앙 레짐(구시대)’의 몰락은 그렇게 서서히 준비되고 있었다. 이마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로 중무장한 도전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2010년 김범석이라는 청년이 쿠팡을 창업했을 때만해도 쿠팡이 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위협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형 아마존’을 표방한 쿠팡은 월마트가 그랬듯이 이마트 앞에 무릎을 꿇을 듯 했다. 하지만 쿠팡은 ‘로켓 배송’이라는 ‘룬샷(loon shot, 미친 아이디어)’을 선보이며 판을 일거에 뒤집었다. 쿠팡이 바꿔 놓은 패러다임의 전환은 엄청난 것이었다. 홈플러스 인수를 검토했던 한 대형 사모펀드(PEF) 대표의 말이다. “온라인 배송은 할인점의 온갖 불편함을 드러내줬어요. 직접 차를 몰고 가서 어렵사리 주차한 다음, 카트를 끌고 물건을 담아 길게 줄을 서 계산까지 해서는 무거운 짐을 직접 집에까지 들고 가는 게 할인점이에요. 클릭 한 번에 다음날이면 집에 물건을 배송해주는 곳이 생겼으니 누가 할인점에 가려고 하겠어요?”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가 여전히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국내 소매 유통 1위인 이마트가 부활하려면 새로운 ‘e’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수년 전서부터 임원 회의 때마다 온라인으로의 전환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직이 굴러왔던 관성을 일시에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마트는 너무나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 성공 방정식이 있는데 이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10월의 인사는 과거와의 결연한 단절을 의미했다. 컨설팅 회사 출신인 1969년생 강희석 대표가 이마트의 새 수장에 올랐다. 임원 상당수가 옷을 벗으며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강 대표의 이마트는 ‘세 가지 화살’을 준비 중이다. 신선식품 중심, 데이터에 기반한 경영, 온·오프라인 통합이다. ‘그로서리(grocery)’는 이마트가 가진 최고의 무기다. 이마트 사람들은 그로서리 경쟁에서도 지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마트 2층의 생활잡화, 의류 등은 어차피 제조업체 공급에 의존하는 것이어서 가격 경쟁을 할 만한 여지가 크지 않다. 이에 비해 신선식품 경쟁력은 이를 매입하는 바이어의 능력에 좌우된다. 이마트는 1993년 출범 이래 약 30년 가까이 경험치를 쌓아왔다. 특히 수산 분야는 쿠팡, 마켓컬리 등 신흥 강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다. 정 부회장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우리 농산물 소비를 위해 ‘콜라보’를 연출하고 있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결국 이마트가 다다르려고 하는 귀착지는 ‘전국의 소비자가 이마트 신선식품을 온·오프라인으로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구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화살의 목적지가 정해지긴 했지만 강 대표가 쏜 화살이 강력하느냐에 대해선 아직 단정하기 힘들다. 이마트는 올 상반기에 영업이익 705억원(별도 기준)을 올렸다. 작년보다 약 29% 줄어든 수치다. 재난지원금 소비처에서 제외된 탓이라고는 하지만 취임 첫 해를 보낸 CEO에겐 반갑지 않은 성적표다. 코로나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이마트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섰다. 쿠팡은 이례적으로 외국인 CFO가 나서 고객 만족을 위해서라면 5000억원의 비용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물 들어 올 때 노 젓겠다는 것으로 전형적인 ‘착한 기업’ 마케팅이다. 이유야 어쨌든 쿠팡은 충성 고객을 늘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바야흐로 강 대표가 준비해 온 화살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증명할 시간이 왔다는 얘기다. 증권가 리포트는 일단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이 이마트 목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새로운 ‘e’ 마트가 유통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할 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이마트의 혁신은 원조를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했다. 까르푸코리아에 이어 2006년 월마트코리아를 인수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필자는 이마트 등 유통업체를 담당하는 초임 기자였다. 그때의 뉴스를 다룬 기사들은 대체로 이런 톤이었다. “한국 실정 몰랐던 월마트의 참패”. 월마트가 놓친 건 한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의 소비 패턴이었다. 미국처럼 한적한 교외에 창고형 매장을 만들어 놓으면 한국의 중산층들이 알아서 찾아와 소비해 줄 것으로 믿었다.
이마트는 ‘토종’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주거지 배후에 차례로 점포를 냈다. 주부들이 마치 동네 시장에 가듯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필자도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이마트 2층에 있는 놀이시설에 ‘출근 도장’을 찍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마트는 재래 시장의 활기를 구현한 곳이자 새로운 휴게, 놀이 공간이었다. 월마트를 인수한 이후 이마트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경쟁자들의 등장이 주마가편이 됐다. 경쟁은 시장을 키웠고, 대형 할인점들은 과실을 만끽했다.‘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공식은 이마트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가가 증명한다. 3년 전쯤 30만원을 웃돌던 이마트 주가는 요즘 10만원 언저리에서 맴돈다. 3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이마트 주가의 추락은 사실 예고된 불행이었다. 이마트 속 ‘e’에는 ‘전자(electronic) 상거래’가 빠져 있었다. 세상은 ‘이커머스’의 시대로 변하고 있었지만 이마트는 그 변화의 속도를 거부했다. 이마트가 속한 신세계그룹은 여전히 오프라인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신세계는 백화점을 모태로 삼고 있는 그룹이다. 백화점은 본질적으로 부동산 임대업이나 마찬가지다. 백화점 임원들은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런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백화점은 돌멩이를 가져다 놔도 팔리는 곳이다”
도전자들의 펀치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마트를 보신주의에 빠지게 했다. SK그룹이 11번가를 설립하고, 기존의 옥션, G마켓, 위메프, 티켓몬스터 등 이커머스의 새로운 강자들이 도전했지만 이마트의 아성을 허물기엔 부족했다. ‘앙시앙 레짐(구시대)’의 몰락은 그렇게 서서히 준비되고 있었다. 이마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로 중무장한 도전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2010년 김범석이라는 청년이 쿠팡을 창업했을 때만해도 쿠팡이 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위협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형 아마존’을 표방한 쿠팡은 월마트가 그랬듯이 이마트 앞에 무릎을 꿇을 듯 했다. 하지만 쿠팡은 ‘로켓 배송’이라는 ‘룬샷(loon shot, 미친 아이디어)’을 선보이며 판을 일거에 뒤집었다. 쿠팡이 바꿔 놓은 패러다임의 전환은 엄청난 것이었다. 홈플러스 인수를 검토했던 한 대형 사모펀드(PEF) 대표의 말이다. “온라인 배송은 할인점의 온갖 불편함을 드러내줬어요. 직접 차를 몰고 가서 어렵사리 주차한 다음, 카트를 끌고 물건을 담아 길게 줄을 서 계산까지 해서는 무거운 짐을 직접 집에까지 들고 가는 게 할인점이에요. 클릭 한 번에 다음날이면 집에 물건을 배송해주는 곳이 생겼으니 누가 할인점에 가려고 하겠어요?”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가 여전히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국내 소매 유통 1위인 이마트가 부활하려면 새로운 ‘e’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수년 전서부터 임원 회의 때마다 온라인으로의 전환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직이 굴러왔던 관성을 일시에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마트는 너무나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 성공 방정식이 있는데 이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10월의 인사는 과거와의 결연한 단절을 의미했다. 컨설팅 회사 출신인 1969년생 강희석 대표가 이마트의 새 수장에 올랐다. 임원 상당수가 옷을 벗으며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강 대표의 이마트는 ‘세 가지 화살’을 준비 중이다. 신선식품 중심, 데이터에 기반한 경영, 온·오프라인 통합이다. ‘그로서리(grocery)’는 이마트가 가진 최고의 무기다. 이마트 사람들은 그로서리 경쟁에서도 지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마트 2층의 생활잡화, 의류 등은 어차피 제조업체 공급에 의존하는 것이어서 가격 경쟁을 할 만한 여지가 크지 않다. 이에 비해 신선식품 경쟁력은 이를 매입하는 바이어의 능력에 좌우된다. 이마트는 1993년 출범 이래 약 30년 가까이 경험치를 쌓아왔다. 특히 수산 분야는 쿠팡, 마켓컬리 등 신흥 강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다. 정 부회장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우리 농산물 소비를 위해 ‘콜라보’를 연출하고 있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결국 이마트가 다다르려고 하는 귀착지는 ‘전국의 소비자가 이마트 신선식품을 온·오프라인으로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구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화살의 목적지가 정해지긴 했지만 강 대표가 쏜 화살이 강력하느냐에 대해선 아직 단정하기 힘들다. 이마트는 올 상반기에 영업이익 705억원(별도 기준)을 올렸다. 작년보다 약 29% 줄어든 수치다. 재난지원금 소비처에서 제외된 탓이라고는 하지만 취임 첫 해를 보낸 CEO에겐 반갑지 않은 성적표다. 코로나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이마트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섰다. 쿠팡은 이례적으로 외국인 CFO가 나서 고객 만족을 위해서라면 5000억원의 비용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물 들어 올 때 노 젓겠다는 것으로 전형적인 ‘착한 기업’ 마케팅이다. 이유야 어쨌든 쿠팡은 충성 고객을 늘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바야흐로 강 대표가 준비해 온 화살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증명할 시간이 왔다는 얘기다. 증권가 리포트는 일단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이 이마트 목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새로운 ‘e’ 마트가 유통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할 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