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1조 투입…스마트대한민국 펀드, 되레 벤처투자 시장 교란"

투자 손실땐 정부가 일부 보전
성과보수 지급기준도 너무 낮아
"민간 자금 블랙홀 될라" 우려
중소벤처기업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민·관 합동 벤처펀드 ‘스마트 대한민국 펀드’ 조성이 본격화되면서 벤처캐피털(VC)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대규모 정책자금 투입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지만, 작은 민간 시장에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의 정부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시장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우려가 더 크다.

중기부 산하 모태펀드 운용사인 한국벤처투자는 최근 스마트 대한민국 펀드의 자(子)펀드 조성 계획을 중심으로 하는 4155억원 규모 ‘2020년 3차 정시 출자사업 계획’을 공고했다. 중기부가 지난달 16일 스마트 대한민국 펀드를 통해 언택트(비대면), 바이오, 그린뉴딜 3개 분야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중기부는 정부가 40%를 대고 민간이 60%를 매칭하는 방식으로 이 펀드를 올해 1조원, 2025년까지 6조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1조원 규모 목표 자금 중 약 42%를 차지하는 그린뉴딜(715억원) 및 민간 멘토기업과 매칭 식으로 출자하는 사업(3535억원)의 경우 손실이 발생하면 일부 정부가 보전해준다. 전체 펀드의 60%를 차지하는 주목적 투자분에 대해 모태펀드가 출자 약정액의 10% 이내에서 우선 손실을 충당해 주는 방식이다.

운용사에 주는 ‘당근’도 확실히 챙겨줬다. 운용사는 기준수익률 이상을 달성하면 그 초과수익의 20%가량을 성과보수로 챙겨간다. 이 펀드는 기준수익률이 연 1%(그린뉴딜 부문), 연 3%(멘토기업 매칭출자 사업)로 낮다. 중기부 관계자는 “우선손실 충당 등의 혜택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대책의 일환이며, 기준수익률을 낮춘 것은 저금리 기조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취지는 좋지만 VC업계에선 이 펀드가 시장 자금을 ‘싹쓸이’할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작년 모태펀드 출자 규모는 1조원 정도였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이미 1조3000억원을 풀었다. 이번 3차 출자분에 정부의 추가경정을 통해 투자되는 금액(2000억원)까지 합하면 2조원에 육박한다.시장에 돈을 풀면 온기가 돌아야 하는데 운용사들이 오히려 민간 자금이 말라붙는다고 느끼는 이 역설은 모태펀드 출자사업이 대부분 그에 상응하는 민간투자 확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민간 출자자(LP)들이 벤처펀드 출자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가운데 대규모 자금이 풀리면서 많은 VC는 자신들이 원하는 영역에서 민간 투자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식으로 펀드가 만들어지면서 질 낮은 펀드가 양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대규모 출자사업을 줄줄이 발표하면서 업계에서 검증된 주요 VC들은 추가 펀드 결성 여력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번 대규모 출자의 수혜자는 상반기 출자 사업에서 탈락한 운용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 대형 VC 임원은 “그간 조명받지 못한 라이징 스타가 나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보통 출자가 몰린 해 결성된 펀드의 해산 수익률은 좋지 못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수요보다는 정부 시책에 따라 출자 분야가 좌우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중소형 VC의 한 심사역은 “정부가 육성하겠다는 3개 분야 중 바이오는 이미 돈이 몰리는 분야고, ‘그린뉴딜’은 범위가 불분명하다”며 “‘그린’을 주장하는 펀드가 결성돼도 실제 투자내용을 살펴보면 기존 펀드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