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감독 오충공 "간토대지진 학살은 반복된 제노사이드"

"민족적인 차별과 식민주의 군부의 만행"

"97년간 해결되지 않은 간토(關東·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 정부와 한국인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재일동포 오충공(吳充功·65) 감독은 사건 발생 97주기를 하루 앞둔 3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지 97년이 흐르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상조사는 물론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감독은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토지방을 중심으로 큰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많은 일본인이 지진으로 사망했지만, 조선인들은 지진이 아닌 일본 군대와 경찰, 민간인에 의해 학살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도쿄와 요코하마 등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10만5천명 이상(행방불명자 포함)이 사망했다.
그러나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방화를 저지른다'는 등 유언비어가 조작됐고 일본 사회의 내부 불만이 조선인에게 향하면서 도쿄,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 등 간토 일대에서 많은 조선인이 일본군과 경찰, 자경단 등에 의해 대량 학살됐다.

당시 한국인 피살자 수는 6천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 감독은 "오랫동안 이 사건을 연구해 온 재일사학자인 강덕상 전 시가(滋賀)현립대 교수는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 배경을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서 찾고 있다"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많은 조선민중과 의병을 학살한 일본군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30년 후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주범인 군대와 경찰 조직의 간부가 됐고, 퇴역군인은 자경단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노사이드(genocide·학살)는 이렇게 반복됐다"며 "간토 조선인 대학살을 단순히 유언비어 때문에 일어났다고 설명할 수 없다.

민족적인 차별과 식민주의 군부의 만행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일본 도쿄(東京)도 지사는 간토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해마다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일본 우익단체는 추도식 때마다 집회를 열며 방해하고 있다.

심지어 동일본대지진, 구마모토 지진 등 큰 재해가 있을 때마다 '조선인이 도둑질을 한다' '폭동을 일으킨다'는 등 한국인에 대한 유언비어가 마찬가지로 돌고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관심도 꼬집었다.

그는 "일본에 일본인들이 세운 조선인 학살 추도비와 재일 조선인이 세운 추도비가 있지만, 정작 한국정부가 세운 추도비는 하나 없다"며 "과거 조선인 학살의 진상 규명을 위해 한국인과 한국정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일동포인 오 감독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상 규명을 위해 '1923 제노사이드, 93년의 침묵'을 2012년부터 8년간 제작중이다.
오 감독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을 기록영화로 제작한 유일한 감독으로, 첫 작품 '숨겨진 손톱자국'(1983)과 두 번째 작품 '불하된 조선인'(1986)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을 제작중이다.

이들 작품은 관동 조선인 학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목격자들의 증언을 자세하게 담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고발하고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희생자 유족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유족 3명이 돌아가셨다.

책임감을 느끼고 하루빨리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작업에 제약이 많지만 내년 9월 간토대지진 추도식 전까지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