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콘텐츠 인사이드] 넷플릭스 장악한 한국의 콜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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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문화부 기자“빠라빠라밤 빠라빠라밤.” 강렬한 시그널 음악이 흐르고, 긴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배우 최불암이 등장한다. MBC 드라마 ‘수사반장’은 1971~1989년 총 880회에 걸쳐 방영됐다. 그 시절 흔했던 가족극도, 애틋한 사랑을 그린 로맨스물도 아니었지만 최고 시청률은 무려 70%를 넘어섰다. 시청자들은 ‘한국의 콜롬보 형사’에 감정을 이입하며 함께 열심히 범인을 찾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수사반장의 후배들은 TV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3년 만에 돌아온 tvN 드라마 ‘비밀의 숲2’(사진)는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방영 전부터 넷플릭스에선 시즌1이 ‘오늘 한국의 TOP10 콘텐츠’에 드는 순위 역주행 현상이 나타났다. 시즌2도 지난 15일 방영 이후 줄곧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방송 최고 시청률 10%를 기록하며 시즌1 성적을 뛰어넘었다. JTBC ‘모범형사’도 넷플릭스 2위에 올랐다.
기존 공식 파괴하며 재탄생
한국 수사극이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수사반장’에서 ‘비밀의 숲’에 이르기까지 부침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 수사극보다 한국 수사극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190개국의 콘텐츠가 있는 넷플릭스에서조차 가끔 “볼 만한 게 별로 없다”고 느끼는 이들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수준 높은 한국 콘텐츠에 익숙해진 영향이 크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건 스토리텔링의 최고 영역에 해당하는 수사극이다. 한국 수사극은 우리의 콘텐츠 저력을 보여주는 대표 장르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수사극의 성패는 몰입도에서 결정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자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보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할 진실을 감춰놓고, 중요한 복선도 곳곳에 깔아야 한다. 유용한 단서인 것처럼 보이나 별 의미가 없는 ‘매거핀(maguffin)’도 넣어야 한다. 어렵고 복잡한 작업이다. 그러나 잘 만든 수사극만큼 시청자의 시선을 오랜 시간 잡아두는 데 효과적인 콘텐츠가 없다.1990~2000년 국내 수사극은 정체기를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처음엔 ‘크리미널 마인드’ ‘셜록 홈스’ 같은 외국 수사극을 보며 따라 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 ‘레베카’ 등을 감독한 거장 앨프레드 히치콕처럼 “서프라이즈가 아닌 서스펜스”를 구현하는 법을 깨달았다. 시청자를 갑자기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정보를 일부 제공하면서도 긴장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차별화된 장점이 만들어졌다. 매회 개별 사건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스토리 안에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담아냈다. 1995년 개국한 장르 전문 채널 OCN이 한우물을 판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OCN 드라마는 초기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점차 마니아들을 양산했다. 2010년 이후엔 ‘신의 퀴즈’ ‘보이스’ ‘터널’ 등 명작을 줄줄이 내놨다.
사회의 길어진 그림자 속으로
최근엔 기존 공식을 파괴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수사극에서 범인은 대부분 외부에 있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드라마 속에서 ‘선(善)’으로만 여겨졌던 검찰과 경찰의 내부로 들어가 은폐된 진실을 찾으며 참신함을 더했다. 우리만의 소재를 결합하기도 했다. tvN ‘방법’은 무당, 굿 등 토속신앙을 소재로 활용해 ‘한국형 오컬트’ 수사극을 탄생시켰다.한국 수사극이 꽃필 수 있었던 결정적인 비결은 ‘사회’ 속으로 성큼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경제 발전과 함께 빠르게 고도화됐다. 하지만 그만큼 범죄도 갖가지 형태로 진화했다. 한국 수사극은 이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고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사회가 갖고 있는 고민, 사람들에게 각인된 트라우마, 이 상처를 보듬는 노력이 작품에 녹아 있다.
김은희 작가가 쓴 tvN ‘시그널’은 시간을 과거로 돌려 미제 사건을 재구성했다. 수사 기법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가 놓쳐버린 범인의 흔적을 찾으며 시청자들은 위로받았다. ‘비밀의 숲2’는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논쟁을 소재로 끌어왔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란 지극히 현실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사건 해결과 함께 버무려 녹여냈다.‘수사반장’의 마지막 회에 나온 대사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도 길어진다.” 과연 한국의 콜롬보 형사에 걸맞은 날카로운 지적이다. 우리는 한국 수사극을 보며 이 묵직한 경고를 곱씹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