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금 '블랙홀'된 美 증시…세계 시총 비중 30%→42%

세계 시총 89조弗 역대 최고치
美 증시 비중 금융위기 후 최고

세계 유동성 美 IT株에 몰려
테슬라 거래대금 日증시의 3배
기술주 IPO '붐' 中증시도 급성장
"美·中 기업 공격투자 기반 마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풀린 유동성이 미국 증시로 쏠리고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비대면 경제’ 수혜가 집중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대거 상장돼 있어서다. IT기업 중심으로 기업공개(IPO)가 줄을 잇고 있는 중국 증시도 작년 말 대비 40% 급성장했다. 반면 유럽 일본 등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거나 디지털화가 상대적으로 늦은 국가들의 증시는 부진했다.

테슬라보다 못한 도쿄증시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말 89조달러를 돌파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주저앉았던 글로벌 증시는 8개월여 만에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 증시 시총은 올 1~3월 작년 말 대비 20% 쪼그라들었으나 이후 30% 가까이 상승했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와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로 풀린 수조달러의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몰린 덕분이다.

글로벌 자금의 블랙홀은 미국과 중국이었다. 특히 뉴욕증시 시총은 지난달 말 사상 최대인 37조달러로 불어났다. 세계 증시에서 차지하는 시총 비중은 2010년 30%에서 42%로, 10년 만에 12%포인트 뛰었다.

IT 기업에 돈이 몰리면서 지난달 31일 테슬라 한 개 기업의 거래대금은 589억8600만달러나 됐다. 도쿄증시(1부) 전체 2171개 상장사의 거래대금(175억5000만달러) 대비 약 세 배 규모다. 테슬라 거래대금은 한국 증시 전체(약 260억달러)보다도 많다. 테슬라는 증시에서 50억달러(유상증자)를 조달키로 했다. 시총 세계 1위 애플은 올 들어서만 1조달러 가까이 몸집을 키웠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유동성이 뉴욕증시로 몰리면서 미국 기업들은 돈을 보다 쉽게 조달해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하게 될 것”이라며 “상장(IPO)과 기업 인수합병(M&A)도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코로나19 사태를 조기 수습한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 증시도 급성장했다. 상하이·선전 등 양대 증시의 지난달 말 시총은 8조7000억달러로 올 들어 40% 증가했다. 국영은행들이 시총 상위를 싹쓸이했던 과거와 달리 IT 기업들이 선두권을 차지한 점도 돋보이는 부분이다. 아오키 다이주 UBS증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국에서 신산업이 활발하게 성장하면서 세대 교체가 원활하게 이뤄졌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전통산업 의존한 유럽은 고전

코로나19 사태의 회복 속도가 더디고 전통산업 비중이 높은 유럽 증시는 여전히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FTSE100 등 런던증시의 시총은 작년 말 대비 약 20% 급감한 상태다. 에너지 은행 등 특정 산업의 의존도가 워낙 높아서다. 자동차와 관광산업 비중이 큰 독일 및 프랑스 증시도 마찬가지다.

도쿄·오사카증시 시총 역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2018년 1월 대비 10% 넘게 쪼그라든 6조1000억달러에 불과했다. 작년 말보다 4% 감소한 규모다. 시총 상위 종목인 자동차 및 전기 관련주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배경이다. 이 때문에 2010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2위 자리를 중국에 내준 일본이 시총 경쟁에서도 완전히 밀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의 세계 시총 비중은 6.8%로, 중국(9.7%) 대비 2.9%포인트 낮다.한국 증시는 비교적 선방했으나 전 고점은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시총은 지난달 말 기준 1580조원으로, 작년 말보다 7% 늘었지만 2018년 4월의 고점 대비 6% 감소했다.

일각에선 미·중 증시의 회복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실물 경기가 가라앉아 있는 데다 일부 IT 기업을 빼놓고선 기업 실적도 좋지 않다는 점에서다. 뉴욕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수익성 지표)은 현재 23배 정도로, 작년까지의 16~18배를 크게 웃돌고 있다. 1990년대 후반 IT 버블 때와 비슷한 수준이란 게 시장의 평가다.

도쿄=정영효/뉴욕=조재길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