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직원의 '셀프 대출'…재발 막을 제도개편 있어야

현장에서

명확한 범법행위는 아냐
기업은행도 형사고발 고심
개인 일탈 막을 규정 필요

정소람 금융부 기자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능력자’네요.” “지점 실적도 좋아졌을 텐데 억울하겠어요.”

최근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드에는 이 같은 은행원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2일 기업은행 직원 A씨가 자신의 가족 앞으로 76억원 규모의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았다는 소식에 대한 반응이었다. A씨는 가족이 대표이사로 있는 법인 5곳 등에 총 29건의 ‘셀프대출’을 감행했다. 이 돈으로 경기도 일대 약 30곳의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 면직됐다. 2016년부터 이 같은 방식으로 건물을 매입해 얻은 시세 차익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차가운 여론과 달리 은행원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A씨가 명확하게 범법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셀프 대출’을 한 것은 맞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정을 어기진 않았다는 것이다. 한 은행원은 “은행원은 부동산에 투자해서 돈을 벌면 안 되는 것이냐”며 “현 정부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것 외에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업은행도 내부 징계를 마쳤지만 후속 대처는 고심 중이다. 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A씨를 배임 등 혐의로 형사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사안이 계속 확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라고 했다.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은행 일선 영업점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셀프 대출이 횡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원이 비윤리적 행위에 동조하는 것은 확실한 규정이 없는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투자용 대출이 필요하다면 다른 은행에서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며 “비슷한 일이 또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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