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장 '곳간' 비어가는데 20년 뒤 재정전망 무슨 소용있나

정부가 206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4~81% 수준으로 예상된다는 장기 재정전망(2020~2060년)을 내놨다. 인구와 성장률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국가채무비율이 계속 증가하다 2040년대 중반 이후부터 채무 증가속도가 경상GDP 증가속도보다 느려지면서 하락세로 전환된다는 내용이다. 국가채무비율이 당장 내년에 46%를 웃돌고 2024년엔 60%에 육박하는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2020~2024년)에 비춰봐도 장밋빛 전망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장기 재정전망을 하면서 인구 감소와 성장률 하락 추세가 이어지는 ‘현상유지 시나리오’, 생산성이 향상돼 성장률 하락세가 완화되는 ‘성장대응 시나리오’, 출산율 제고 등에 따라 인구 감소세가 둔화되는 ‘인구대응 시나리오’ 등 세 경우를 상정했다. 어떤 시나리오든지 국가채무비율이 2040년대 중반 최대 90%대 후반의 최고치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만약 여기서 정책 실패로 인해 현상 유지는커녕 악화되는 시나리오가 추가되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국가채무비율이 최고치 도달 시기가 훨씬 앞당겨지는 것은 물론, 100%를 돌파할 공산이 크다.장기 재정전망을 불안하게 하는 변수는 곳곳에 있다. 당장 지출관리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재정준칙 도입을 미루면서 2022년까지 확장재정 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다음 해부터 지출 증가율을 낮춘다는 계획이지만, 2023년은 차기 정부의 첫해다. 임기 중에는 펑펑 쓰고 그 뒤는 ‘나 몰라라’ 하는 식이면 재정파탄이 빨리 닥칠 게 뻔하다. 가뜩이나 고령화, 사회안전망 확충 등으로 의무지출이 급증하는 터에 재량지출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장기 재정전망에서 총지출이 경상성장률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정부의 가정 자체가 빗나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4대 공적연금도 시한폭탄이다. 정부는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합리적 수준의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면서도 그저 말뿐이다. 국민연금의 사회적 합의안 마련은 이미 물 건너갔고, 군인연금 등 직역연금 개선 논의는 아예 없다. 여기에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새로운 불안요인도 더해지는 양상이다.

국가채무비율을 통제하려면 강제력이 있는 정량적인 재정준칙이 도입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해마다 초팽창 예산을 편성하고, 연금개혁은 마냥 미루고, 성장률을 더욱 추락시킬 기업 규제를 쏟아내면 ‘부채공화국’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