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 요한손 '아스트라제네카' 회장, 8년 만에 시총 70조 → 173조 '대도약'

글로벌 CEO

화이자의 통큰 인수 제안 거절
R&D에 집중…매출 끌어올려

특유의 모험심 많은 리더
변화 많은 산업서 기업가 정신 발휘
위기 때마다 중요한 결정 이끌어내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세계 의대와 협력
일러스트=허라미 기자 ramy@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더욱 주목받는 글로벌 제약회사가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암·심혈관·신장·호흡기 질환 등의 전문의약품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1998년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스웨덴의 아스트라와 영국 제네카가 합병해 설립됐다. 현재 세계 100여 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244억달러(약 29조원)를 기록했다. 런던증시에 상장돼 있으며 지난달 31일 기준 시가총액은 1094억파운드(약 173조원)에 달한다.

R&D 중심의 구조조정 이끌어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 케임브리지, 스웨덴 예테보리, 미국 게이더스버그 등 3곳에 R&D센터를 두고 있다. 전체 직원 7만여 명 중 9200여 명이 연구 인력으로 신약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지난해 R&D에 매출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61억달러를 투자했다. 적극적 개방형 협력(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에 따라 전 세계 의과대학, 바이오 스타트업 등과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레이프 요한손 회장이 이런 경영 전략과 주요 사업 결정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2012년 아스트라제네카에 합류해 그해 4월 이사회 이사가 됐고, 6월 의장에 선출됐다.

요한손 회장은 아스트라제네카에 합류하기 전 스웨덴의 대표적 기업인 가전회사 일렉트로룩스, 완성차업체 볼보 등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통신장비회사 에릭슨의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경험도 있으며 제약업체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의 이사로 일하며 제약산업도 경험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와 유럽기업인라운드테이블 의장을 맡는 등 대외활동도 활발히 해 왔다.요한손 회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분야에서 특유의 모험심과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에 합류할 당시 회사는 다수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매출이 줄어드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었다. 2011년 335억달러였던 매출은 2012년 279억달러까지 떨어졌다.

요한손 회장은 회사 경영진과 함께 R&D에 다시 집중하는 전략을 세웠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R&D센터를 3곳으로 집중시켰다. 본사는 런던에서 케임브리지로 이전했다. 인력 감축 등을 통해 마련한 재원을 R&D에 집중시켰다. 2018년 220억달러까지 떨어졌던 매출은 지난해부터 가파르게 반등하고 있다.

요한손 회장의 굵직한 업적 중 하나는 2014년 화이자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사례가 꼽힌다. 화이자는 2013~2014년 세 차례에 걸쳐 인수가를 높여가며 아스트라제네카 인수를 타진했다. 인수가는 1차 989억달러에서 최종인 3차에 1166억달러까지 올라갔다.인수 제안이 나오기 직전인 2013년 9월 아스트라제네카의 시총은 60억달러 안팎이었다. 금융업계에선 아스트라제네카가 화이자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요한손 회장은 “화이자가 아스트라제네카의 기업가치와 미래 성장성을 여전히 낮게 평가하고 있다”며 거절했다. 그는 “화이자가 전략적으로 의미 있는 사업 비전과 기업가치 확대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아스트라제네카는 성장세를 되찾으며 그의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한국 제약업계와도 깊은 인연

요한손 회장은 스웨덴 칼머스공대에서 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1977년 엔지니어로서 포스코의 포항제철소를 방문해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볼보 CEO를 지내던 1997~2011년 당시에는 삼성중공업의 건설중장비 사업을 인수하기 위해 서울을 자주 찾았다. 에릭슨 재직 시절에도 한국의 SK텔레콤과 함께 세계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 네트워크 개발에 협력했다.요한손 회장은 아스트라제네카 회장으로서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했다. 작년 6월 스톡홀롬에서 열린 스웨덴-한국 비즈니스서밋에서 그는 양국 제약산업 협력 방안으로 6억3000만달러 투자 계획을 내놨고, 이를 실행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스웨덴 경제사절단과 함께 방한했다.

그는 KOTRA,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바이오협회,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4개 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R&D, 생산, 협력사 지원, 글로벌 시장 진출, 바이오헬스 생태계 구축 분야에서 협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요한손 회장은 방한 당시 “한국은 의약품 제조와 생산에서 높은 역량을 갖고 있다”며 “협력을 통해 한국 제약산업의 수출을 지원해 전 세계 환자들의 의료 수요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협력 대표 사례로는 SK바이오텍이 제조하는 당뇨병 치료제 포시가와 온글라이자가 아스트라제네카를 통해 세계 98개국 300만 명의 환자에게 제공된 것을 들 수 있다. SK바이오텍은 이 치료제를 연 1억달러 규모로 생산하고 있다.

7월에는 아스트라제네카와 SK바이오사이언스, 보건복지부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AZD1222’의 글로벌 공급망 강화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SK바이오사이언스는 AZD1222의 원액 제조 공정 등을 맡게 됐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옥스퍼드대와 함께 개발 중인 AZD1222는 현재 각국에서 개발 중인 150여 개 백신 후보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아스트라제네카는 국내 기관 및 연구진과 다양한 협력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폐암, 위암, 췌장암, 유방암 등 국내 사망 원인 1위로 꼽히는 암 극복을 목표로 MOU를 체결하고 매년 4건의 국내 연구진 과제를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 공장과 연구시설이 없는데도 2018년 복지부로부터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