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중견·중소기업들 유동성 위기 겪지않게 과감히 자금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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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훈의 스페셜인터뷰월드클래스기업은 글로벌 강소기업 300개를 육성하기 위해 2011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중견·중소기업 지원 프로젝트다. 이들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단체인 월드클래스300기업협회는 최근 이름을 월드클래스기업협회로 바꿨다. 내년부터 10년 동안 추가로 150개가 선정되는 월드클래스플러스사업이 이어짐에 따라 굳이 ‘300’이란 이름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월드클래스기업 중 상당수는 기술력이 있고 글로벌 시장 개척에 적극적인 업체다. 회원사는 기계 장비 소재 바이오 의약품 화학 전자 통신 자동차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현재 회원사는 286개다.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오석송 메타바이오메드 회장(66)을 지난 8월 말 서울 삼성동 무역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올 2월 회장에 취임했다.
오석송 월드클래스기업협회 회장
▷월드클래스사업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습니다.
“2011년 시작됐으니 올해로 벌써 10년째가 됐네요. 협회는 2013년 창립총회를 열었으니 7년 됐고요. 우리는 회원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우수한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나누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이른바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도약하도록 돕는 곳입니다. 이를 위해 해외 연수, 유럽시장 진출 지원, 채용박람회 등을 통한 고용 확대, 기업 애로사항 건의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많습니다.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섰던 월드클래스기업 역시 예외는 아닐 듯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뿐 아니라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 기업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내수 중심 업체보다 수출 중심 업체가 더 어렵습니다. 바이어와 상담을 위한 해외 출장이 어렵고, 해외 전시회도 대부분 중단됐습니다. 올해 참가하려던 독일 전시회가 상반기엔 대부분 취소됐습니다. 내년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예정이던 CES 2021은 온라인 전시회로 대체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조강국 독일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회원사들의 독일 탐방계획과 CES 2021 참관 계획도 취소됐습니다. 해외시장 개척의 어려움은 수출 감소로 직결되고 있습니다.”▷해외 전시회가 시장 개척을 위해 무척 중요하지요.
“일반인은 해외 전시회를 신제품을 선보이는 곳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중요성은 더 큽니다. 기업들은 현지 전시회에서 기존 바이어들과 시간별로 쪼개 미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독일 전시회는 글로벌 바이어가 총집합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기존 바이어와의 미팅, 신제품 소개, 신규 바이어 발굴이 한꺼번에 이뤄집니다. 세계적인 전시회 한 곳에 출품해 1년 매출의 약 30%에 해당하는 물량을 수주하는 기업도 많습니다. 온라인 수출상담은 한계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온라인 상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첨단기술 도입 등을 다각도로 연구 중입니다.”▷업체별로 사정이 다르겠지만 기업의 가장 큰 애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첫째,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시장 개척이 더 어려워졌다는 점입니다. 기존 거래처와는 어느 정도 거래가 유지되겠지만 기업은 늘 신규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또 수출용 자재 수입이 원활하지 않아 생산 및 수출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품을 운반할 선사나 항공편을 확보하는 데도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둘째, 코로나19로 인해 매출과 수익이 감소할 경우 자금 경색을 겪게 됩니다. 게다가 원자재 가격과 물류 운반비, 각종 부대비용까지 올라서 문제입니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은행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기업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시의적절하게 각종 정책을 추진한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번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월드클래스기업을 위한 ‘기술혁신전문펀드’를 약 5000억원 조성해 연구개발(R&D) 활동에 투자하는 계획도 발표됐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직접 상대하는 은행 창구에선 종전과 별로 다르지 않게 담보대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기술력 있는 기업들이 일시적 유동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신규 대출도 활성화돼야 합니다. 기술력 있는 수출기업이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부는 현장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제조업 강국 독일에선 글로벌 금융위기 때 오히려 금융회사들이 기업 지원을 늘려 위기를 극복했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독일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은행들이 더 적극적으로 기업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재무제표보다 기술력 등을 중시하는 이른바 관계형 금융 덕분이지요. 어차피 경기는 침체와 회복을 반복하기 때문에 위기를 잘 넘겨야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습니다. 이게 독일 은행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국내 은행들도 기술력 있고 글로벌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는 중견·중소기업에 과감하게 지원해주면 좋겠습니다.”▷기업인의 해외 출장 문제에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사항이 있는지요.
“자가격리에 따른 업무 공백을 해결하려면 기업인을 위한 신속통로(패스트트랙) 창구의 다양한 운용이 필요합니다. 일부 국가에 대해선 패스트트랙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외국과 협상에 나서주면 좋겠습니다. 기업인이 일반 관광객과 동일하게 출장 가서 해외에서 2주 격리, 귀국해서 또 2주 격리를 해야 한다면 어떤 비즈니스도 할 수 없습니다. 외교란 게 상호주의에 입각한 것이다 보니 상대국 정부의 입장도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기업들의 사정을 감안해 정부가 더 노력해주기를 부탁합니다. 주요 수출국과의 왕래가 원활해지도록 힘을 기울여주면 좋겠습니다.”▷이번 기회에 기업 규제나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한시적으로라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는 요구도 있습니다.
“위기엔 우선 살아남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경기 회복기에 다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업에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각종 환경규제, 노동규제를 코로나19 국면에서 한시적으로 풀어줄 것을 정부와 국회에 요청합니다. 규제가 일시 완화돼도 환경과 민생에 큰 해악이 없는 것은 과감하게 푸는 결단을 내려줄 것을 부탁합니다.”▷기업 스스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코로나19는 한국만이 겪는 게 아닙니다.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다만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코로나19 유탄에 맞아 치명적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경쟁력있는 중견·중소기업이 무너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정부와 은행의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고용이 유지될 수 있고 경기회복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 협회는 취업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지난 5월 교육부·산업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고졸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어렵더라도 미래 먹거리 준비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에도 속도를 내야 합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나면 한국 기업들이 더 강해졌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위기 극복의 DNA가 새겨져 있습니다. 정부와 은행, 기업과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이 위기를 이겨내야 합니다.”■ 오석송 회장은△1954년 충남 서천군 출생
△1984년 단국대 일어일문학과 졸업
△2011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경영학박사
△1990년~ 메타바이오메드 대표
△2010~ 코스닥협회 고문
△2010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2012년~ 한국기술교육대 재단이사
△2014년~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비상임이사
△2020년 2월~ 월드클래스기업협회 회장
△포상: 중소기업청장상, 산업포장, 기업경영자 대상, 올해의 무역인상 등 다수
김낙훈 한경글로벌강소기업연구원장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