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공업에 여직원 적다고 망신 주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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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 사정 감안 않고 명단 공개“기계장비·건설회사에 여직원 수가 적다고 페널티 주는 게 말이 됩니까?”
효과 고려 없이 보여주기 행정만
백승현 경제부 기자 argos@hankyung.com
정부가 매년 ‘남녀고용을 차별하는 회사’라며 기업 명단을 공개하고 있는 데 대해 한 기업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른바 ‘적극적 고용개선(AA·affirmative action)’ 조치로 여성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잣대로 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볼멘소리다.고용노동부는 지난 1일 AA 미이행 사업장 52곳의 명단을 공개했다. “직원과 관리자 중 여성 비율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부족한 기업들”이라는 설명과 함께다.
2006년 도입한 AA제도는 매년 기업들이 남녀 근로자 비율 등을 신고하는 제도다. 2014년부터는 ‘불량 사업장’의 명단을 공개하고 페널티를 주고 있다. 대상 기업은 2006년 공공기관 및 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장으로 시작해 지난해부터는 300인 이상 민간기업 등으로 확대됐다.
고용부는 명단 공개 대상 기업에 대해 사업주 이름, 전체 근로자 수와 여성 비율, 여성 관리자 수 등을 관보에 게재하고 고용부 홈페이지에도 6개월간 게시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명단 공표 사업장은 조달청 지정심사 신인도 심사에서 5점 감점하고 가족친화인증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라도 고용 불평등을 자발적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올해 명단이 공개된 사업장은 국방과학연구소를 제외한 51곳 모두 민간기업이다. 근로자 1000인 이상 기업 중에서는 두산건설, 수원여객운수 등이 포함됐다. 1000인 미만 사업장은 경동엔지니어링, 계양전기, 고려강선, 대한조선 등 44개 기업이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여성 고용을 늘리기 쉽지 않은 기업이라는 점이다. 업종별로 보면 금속가공·기계장비 등을 다루는 중공업이 33%(17곳)로 가장 많고, 사업지원서비스업(31%·16곳), 사업시설관리 관련업(12%·6곳), 건설업(6%·3곳) 순이었다.
경영계에서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개별 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현황을 신고하라는 고용형태공시제와 함께 기업 망신 주기 행정의 대표적 사례”라며 “개별 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잣대로 기업의 인력 운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과태료 부과 등 강제성이 없고 사업주가 고용차별 개선 노력만 보여도 명단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물론 ‘유리천장’이란 말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고용차별 문제는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말 안 들으면 망신 준다’는 식의 정책은 효과도 크지 않을뿐더러 가뜩이나 심해진 정부와 경영계 간 또 다른 ‘불통’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