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규제는?

조선 정조 때 한양의 쌀값이 폭등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한성부윤(지금의 서울시장)은 쌀값 상한제와 구매량 제한을 시행하고, 쌀값을 올려 폭리를 취하는 상인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정조에게 건의했다. 정조도 수긍해 그같은 교지(敎旨)를 내렸다. 이때 연암 박지원이 상소를 올려 정조의 어명을 반대했다. 요지는 이랬다. "지금 한양의 쌀값이 올라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쌀을 짊어지고 올라오고 있는데, 쌀값을 올려 받으면 사형을 시킨다고 하니 발길을 돌린다. 이들이 돌아가면 쌀이 부족해져 한양 백성들은 굶어 죽게된다" 그제서야 정조도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교지를 거뒀다.

쌀값 폭등을 진정시키려면 쌀 가격을 억지로 통제할 게 아니라 쌀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평범한 시장의 진리를 말해주는 일화다. 표면적으로는 쌀값 상승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쌀 공급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연암은 꿰뚫어 본 것이고, 정조는 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수백년 전에나 있을 법한 어리석은 일화 같지만 요즘에도 이와 비슷한 일은 흔히 발생한다. 정부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앙등을 수급 조절로 풀지 않고, 막무가내 가격 통제로 해결하려 드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최근 전세가격을 규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기존세입자에 대해선 전세값을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전세를 사는 세입자 입장에선 임대료가 안정돼 반길 일 같지만 따져보면 좋아할 일만도 아니다. 전세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되자 집주인들은 전세 놓기를 꺼리고 있다. 상당수 집주인들은 전세를 월세로 돌리거나 아예 자녀나 친지 등에게 증여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장엔 전세 매물 품귀현상이 생겼고, 그나마 나온 전셋집은 가격이 크게 올랐다. 서울 일부 지역의 경우 전세가격이 종전 보다 50% 가까이 급등한 사례도 나온다. 한양의 쌀값을 규제하니 쌀 공급이 줄어들어 가격이 더 뛰는 것과 같은 일이 벌이지고 있는 것이다.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법정 최고이자율을 현행 연 24%에서 연 10%로 낮추겠다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은행에서 대출을 못받는 저신용자들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쓰고 있다. 이들이 물고 있는 이자는 평균 연 20% 정도다. 높은 연체율과 조달금리 등을 감안해 형성된 시장금리다. 이 금리를 절반으로 깎으라고 하면 상당수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는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아예 중단할 게 뻔하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면 저신용 서민들은 불법 사채시장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선 연 100%가 넘는 살인적인 이자를 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당장은 반짝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나쁜 결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가격을 잡기는 커녕 오히려 더 뛰게 하는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인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가격 그 자체만 억누르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다. 물론 시장이 언제나 진리는 아니다. 시장도 실패할 수 있다.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 개입이나 규제가 필요한 때도 있다. 독과점이나 매점매석, 불공정 거래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규제하더라도 직접적인 가격 통제만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격이야 말로 시장경제의 가장 기본 원리인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공급 확대와 경쟁 활성화를 통해 안정시키는 것이 정공법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시장의 작동원리가 파괴된다. 일종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잘려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 후유증은 크다. 한 번 망가진 시장 메커니즘은 복구하기 쉽지 않다. 자칫 규제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새로운 규제를 만들고, 또 그것이 폐해를 낳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정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규제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을 꼽으라면 단연 가격 통제를 들 만하다. 시장에도 그렇고, 정부 자신에도 그렇다.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