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막은 택시기사 "끼어들기 기분 나빠 고의사고 냈다"

변호인 "보험금 갈취 목적은 아냐"
"사건 과장돼 억울해 하고 있다"
이전에도 구급차 등 고의사고 의혹
응급환자를 후송 중이던 구급차를 막아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택시기사 최 모씨. 사진=뉴스1
응급환자가 탄 구급차와 접촉사고가 나자 사고 처리를 요구하며 막아서 결국 환자를 숨지게 한 택시기사가 첫 공판에서 고의사고 혐의를 인정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3단독 이유영 판사는 4일 오전 업무방해·특수폭행(고의사고)·공갈미수 등 혐의를 받는 최모(31)씨에 대한 첫 공판 기일을 열었다. 해당 택시기사는 종전에도 구급차와 고의사고를 낸 적이 있으며, 수년에 걸쳐 접촉사고를 빌미로 피해자들에게 합의금과 치료비를 받아내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자리에서 최씨 측은 보험금 편취 관련 일부 혐의를 제외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은 지난 6월 택시 운행 중 사설구급차가 택시 앞으로 끼어드는 걸 보고 고의로 들이받고 구급차에 타고 있던 환자의 보호자와 운전자가 연락처를 제공했음에도 '사건 처리가 먼저인데 어딜 가냐'며 구급차가 출발하지 못하게 몸으로 막아섰다"며 "응급환자를 이송 중이던 사설구급차의 이송 업무를 11분 동안 방해하고 고의로 교통사고를 유발했다"고 설명했다.또 "피고인은 고의로 교통사고를 유발했음에도 피해자가 과실로 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보험사에 사고를 접수하게 해 수리비 명목으로 72만원을 편취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씨가 이 사건 이전에도 한 차례 사설구급차의 진로를 방해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날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2017년 7월 택시를 운행하던 중 사설구급차가 다가오자 구급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일부러 진로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후 구급차가 택시 앞으로 끼어들려고 하자 고의로 들이받고 운전자를 협박해 합의금을 받으려 했으나 운전자의 불응으로 미수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검찰은 또 최씨가 2011년부터 택시와 전세버스 등을 운행하며 일어난 접촉사고에 대해 통원치료가 필요한 것처럼 행세하며 보험금을 편취했다고 보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최씨는 2015년 2월 택시를 운행하다 정차하던 중 이른바 '문콕' 사고가 발생하자 그 사고로 인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될 정도의 상해를 입은 것처럼 통원치료를 받은 뒤 피해자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약 120만원을 받았다.

이후 최씨는 2016년 전세버스를 운행하던 중 접촉사고가 나자 병원 치료가 필요 없음에도 합의금 및 치료비 명목으로 피해자로부터 약 240만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검찰은 이외에도 최씨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택시를 운행하며 경미한 접촉사고 발생으로 인한 합의금 및 치료비 명목으로 4회에 걸쳐 4개 보험회사로부터 총 1700여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최씨 측은 고의로 사고를 낸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최씨 측 변호인은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들과 만나 고의사고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보험금 편취 명목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변호인은 "고의에도 여러 단계가 있는데 피고인은 운전 중 상대방이 끼어드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상대 차량이 끼어들어도 그대로 간 것"이라며 "가만히 있는 차를 들이받아 보험금을 타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변호인은 "(최씨) 본인으로서는 (사건이) 너무 과장돼서 커져 심적으로 억울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앞서 최씨는 지난 6월8일 오후 서울 강동구 지하철 5호선 고덕역 인근 도로에서 구급차와 접촉사고가 나자 "사고 처리부터 하라"며 구급차를 10여분간 막아선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해당 구급차는 호흡 곤란을 호소하던 폐암 4기 환자 박모(79)씨를 태우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환자는 다른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당일 오후 9시쯤 끝내 숨졌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