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정식 자서전·라스트 캠페인

탐식수필

▲ 이정식 자서전 = 이정식 지음.
냉전 시대였던 1970년대 초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쓴 '한국 공산주의운동사(Communism in Korea)로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국내외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저자가 자신의 인생 전반부를 회고한다. 1931년생인 저자가 중국 한커우로 이주한 1936년부터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우드로 윌슨 재단 상을 받은 1974년까지를 기술한다.

저자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었던 경우보다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길을 무턱대고 걸었던 때가 더 많았다고 말한다.

특히 이 자서전에서 서술한 시기가 그랬다. 중국과 일제 치하의 만주, 한국을 오가며 어린 나이에 시대의 격변에 내몰렸던 저자의 인생은 해방 이후에도 평안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행방불명으로 만 14살에 가장이 된 그는 의원 조수, 면화공장 청소부 등 갖은 일을 해가며 생계를 이어가다 국민당과의 내전 끝에 공산당 군이 만주를 장악하자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 귀국한다.

그러나 그가 고국에서 맞닥뜨린 것은 극심한 좌우대립의 혼란과 한국전쟁이었다. 미군의 중국어 통역으로 일하게 된 저자는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해 맹렬히 영어를 공부하고 우연한 기회에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일제의 식민 통치,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의 와중에 한국과 중국, 일제 치하의 만주를 오가며 힘겹게 살았지만, 그 덕에 능통해진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학자의 길을 걷는 그에게 뜻밖의 자산이 됐다.

UC 버클리에서 스칼라피노 교수의 연구에 합류할 수 있게 된 데에도 추천서에 기재된 어학 실력이 큰 작용을 했다. 만주의 소년 가장은 미국 아이비리그의 일원인 펜실베이니아대학 정치학 교수가 됐고 회원 수가 1만명이 넘는 미국정치학회가 1년에 단 한 번 수여하는 우드로 윌슨 재단 상을 받을 정도로 우뚝 섰다.

책의 첫머리에 내세운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제목처럼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미국 유학 초기 할리우드 영화의 단역 배우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하마터면 배우의 길로 나설 뻔했던 때였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일조각. 382쪽. 2만8천원.
▲ 라스트 캠페인 = 서스틴 클라크 지음, 박상현 옮김.
존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생이자 미국 리버럴의 영원한 아이콘인 로버트 케네디가 1968년 대선에 출마해 암살되기까지 82일간의 극적인 여정을 담았다.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진 채 불평등과 인종 차별 등으로 곪아가던 '상처 입은 국가' 미국에서 케네디는 42세의 젊은 나이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처음에는 형의 후광에 기댄 선거운동을 하던 그는 차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명분 없는 전쟁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희생과 도덕적 수치, 빈민층과 소수인종의 고달픈 삶,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한 미국인 개개인의 책임을 말하는 이상주의적 연설로 군중을 열광시키며 백악관에 바짝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인디애나폴리스 유세에서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 소식을 듣고 흥분한 군중을 달래가면서 형의 죽음을 언급하고 아이스킬로스의 시를 읊으며 "이 세상에서의 삶을 순화시키는 숭고한 대의에 동참할 것"을 부탁하는 명연설을 했다.

인디애나폴리스는 미국 대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킹 목사 암살 직후의 폭동 사태를 비껴갈 수 있었고 그의 연설은 지금도 미국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연설의 하나로 남아 있다.

그러나 경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변의 끊임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군중에 최대한 노출한 채 선거운동을 진행하던 케네디는 출마를 선언한 지 82일만인 1968년 6월 6일 요르단계 이민자에 의해 의문의 암살을 당한다.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로버트 케네디가 좋은 대통령이 됐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선거운동 중에 수백만 명의 미국인에게 자신이 좋은 사람, 어쩌면 위대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이 케네디의 죽음을 애도한 이유는 그들이 상처 입은 나라를 치유하고 더러워진 명예를 회복 시켜 줄 지도자를 간절히 바랐고 다시금 숭고한 정신을 느낄 수 있기를 절실히 바랐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모던아카이브. 440쪽. 2만2천원.
▲ 탐식 수필 = 정상원 지음.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셰프가 음식에 녹아있는 역사와 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펼친다.

저자는 전혀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우리네 음식과 너무도 흡사한 음식을 만나 편안함으로 위로받기도 하고 같은 재료가 서로 다른 대접을 받는 현장에서 유쾌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한 나라에서 시작된 음식이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변신을 거듭하며 정착하거나 몇몇 재료가 세계 공통의 음식 문화를 만들어내는 기준이 되기도 한 사실을 확인하며 삶의 지혜를 맛본다.

5개 장 가운데 첫 장은 식자재와 요리들의 맛의 역사를 해석하며 두 번째 장은 조리의 과학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어 프랑스 정찬을 메뉴 고르기부터 디저트까지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이와는 대조적인 간이식사의 소중함과 맛도 부각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저자가 예술 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얻어 만든 요리들을 소개한다.

저자가 직접 찍은 수많은 음식 사진들을 함께 실었다. 아침의정원. 330쪽. 1만7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