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安美經中"이란 인식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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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1946년 2월 22일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 조지 케넌은 워싱턴으로 전보를 쳤다. 미국의 대규모 원조로 독일과의 싸움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러시아는 전쟁이 끝나자 드러내놓고 공격적이 됐다. 러시아의 이런 돌변에 당황한 미 국무부는 케넌에게 러시아의 본질과 전략에 대해 분석해 대응책을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의 전보는 그 지시에 대한 답신이었다.
지향하는 가치와 질서가 다른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간 대결
주미대사의 "安美經中" 발언은
1940년대 냉전 상황과 같은
이런 구도를 읽지 못해 나온 것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긴 전보’란 이름을 얻은 이 보고에서, 케넌은 공산주의 러시아가 제정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받은 국가이며, 공산주의 이론과 기구들은 그런 역사와 전통에 덧씌워졌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경쟁 국가와 협약이나 타협을 한 적이 없고 오직 그것의 완전한 파멸을 통해서만 안전을 추구해 왔는데, 자본주의의 파멸을 추구하는 공산주의는 이런 경향을 심화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성의 논리에는 반응하지 않고 힘의 논리에만 반응한다”고 진단했다.케넌은 “세계 공산주의는 병든 조직만을 먹는 병적 기생충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 사회의 건강과 활력이 공산주의를 막아내는 힘이라고 지적하며 “우리 자신의 방법 및 인간 사회에 대한 개념들을 고수할 용기와 자신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보고는 미국이 일관성과 효력을 갖춘 정책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근년에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고 국력이 커지면서, 점점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이 됐다. 중국에 특혜를 주고 중국에 대한 투자와 기술 이전에 제약을 두지 않은 서방 국가들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들은 중국이 자유 세계와 교류하면 자유 세계를 본받아 바뀌리라고 기대했다.
이런 사정을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그레이엄 앨리슨의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주목받는다.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그리스 패권을 놓고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투키디데스의 관점에서 보아, 새로 일어서는 국가가 패권 국가에 도전하면 전쟁 위기가 닥친다는 얘기다. 앨리슨의 얘기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례로 이론을 떠받쳐서, 현재 패권 국가인 미국과 도전하는 중국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틀로 자리 잡았다.아쉽게도 앨리슨은 자신의 이론을 정리(theorem)로 일반화하는 데 주력해서, 두 강대국의 대립을 특히 위험하게 만드는 중국적 특질을 드러내는 데 소략했다. 70여 년 전 케넌의 통찰은 거의 그대로 중국에 적용될 수 있다. 중국의 중세적 전통과 19세기 후반 이후의 ‘백년국치’는 중국의 태도를 근본적 수준에서 결정한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중국의 전통과 역사에 작용해서, 러시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안으로는 더욱 압제적으로 만들고 밖으로는 더욱 공격적으로 만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장경제 채택이 공산주의의 부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원숙해진 뒤에야 공산주의가 도래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시장경제의 채택이 공산주의로 가는 과정이라고 우길 수 있다. 실제로 레닌이 그렇게 했다. 1920년대 초엽 볼셰비키 정부가 생산물을 수탈하자 경제가 무너졌다. 그래서 재산권을 부활시키고 “모두 부자가 돼라”고 독려했다. 그런 ‘신경제정책(NEP)’이 성공해서 경제가 부활하자, 레닌은 흡족해서 NEP가 한참 더 지속돼야 공산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이 처음 시장경제를 도입할 때 덩샤오핑도 NEP를 좋은 선례로 들었다.
이처럼 미·중 사이의 여러 상이점은 지향하는 가치와 질서의 상이로 귀결된다. 두 강대국의 패권 경쟁은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대결이다. 1940년대의 냉전과 상황이 본질적으로 같다. 두 나라가 공존하는 방안을 찾아내는 일은 그만큼 힘들 것이다. 우발적 군사 충돌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을 무시하고 남중국해를 내해로 포함시키려는 중국의 시도는 이미 전쟁 위험을 크게 높였다. 이번에 주미 대사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두 강대국이 부딪칠 때 약소국이 자기 입맛에 맞게 골라서 상대할 수 있다는 인식의 비현실성과 그에 따르는 위험을 떠나서, 그 발언은 미·중 갈등에 걸린 것이 근본적 가치와 질서라는 점을 가장 중요한 직무를 맡은 우리 외교관이 깨닫지 못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