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후 퇴근→퇴근후 소비…'동네 경제'가 뜬다

코로나로 '상권 대역전'

도심 텅텅, 주택가 매출↑
GS25 '만년 1위' 홍대점 제치고
주거 밀집지 인천 부평점 1위로

"근거리 소비패턴 지속될 듯"
주택가 인근에 있는 GS25 서울 역삼 직영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상권 지형을 바꿔 놓고 있다. ‘소비 후 퇴근’에서 ‘퇴근 후 소비’ 문화로 바뀌면서 서울 명동 등 ‘A급지’ 상권이 몰락하고, 하급지로 꼽히던 주택 밀집지 인근 점포들이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섰다. GS25 서울 신당동점이 지난해 전국 1만4000개 점포 중 매출 21위에서 올해 5위(8월 말 기준)로 껑충 도약한 게 대표적 사례다.

동네 경제의 재발견

주택가 인근에 있는 GS25 서울 역삼 직영점.
7일 외식·유통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장기화 이후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동네 경제’의 부상이다. 편의점업계의 출점 경향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관계자는 “1000가구 이상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 점포를 확보하기 위해 편의점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며 “코로나19 이전엔 출점 경쟁지가 유흥지역, 관광지, 대학가 등이었다면 요즘엔 동네 상권으로 몰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동네 상권 매출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GS25의 지난해 매출 톱5 점포는 서울 홍대(유흥)와 인천 부평(주거복합), 서울 여의도(오피스), 인천공항(특수시설), 경기 분당점포(유흥)였다. 올해(1~8월)는 부평, 여의도, 홍대, 서울 가락동(주거복합), 신당동점포(주거복합)로 바뀌었다. 배후에 대규모 주거단지를 끼고 있는 가락동점과 신당동점이 지난해 14위와 21위에서 올해 톱5 안으로 들어왔다.

명동, 신천 등 A급지로 불렸던 곳들은 권리금이 연초 대비 30%가량 떨어졌다.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장은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광화문 교보빌딩까지 1층에 ‘임대 팻말’이 붙은 건물만 23개”라며 “지하 또는 2층 이상 가게들의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 패턴 변화가 요인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쇼핑과 외식의 동선이 집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상권의 중심축도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형 동네 슈퍼인 GS더프레시가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계에서 유일하게 실적 상향 곡선을 그리는 것도 이 같은 흐름에 기인한다. GS더프레시는 올 상반기 전국 318개 점포에서 659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3% 늘었다. 영업이익은 256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이 큰 외식업체들 중에서도 주거지 인근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원할머니보쌈·족발이 대표적이다. 이 프랜차이즈 업체는 올해만 가맹점을 40여 개 늘렸다. 제너시스BBQ치킨도 최근 시작한 배달전문 매장(BBQ 스마트치킨)을 포함해 총 150여 개 매장이 더 늘었다.

‘스마트 워크’ 확산도 변수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근거리 소비 패턴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강병오 중앙대 겸임교수는 “전국 단위 빅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지역 단위 딥데이터에도 주목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불특정 다수’ 대신 ‘우리끼리만’ 하는 소비 문화가 찾아오고 있다”고 진단했다.중고거래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당근마켓의 성공 비결도 ‘우리끼리 문화’와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다. 거래 대상을 동네 주민으로 한정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인 게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근무 형태가 출근제에서 재택근무로 바뀌는 점도 소비 패턴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출근하는 거점 오피스 제도를 시행하는 기업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SK텔레콤 롯데쇼핑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으로 확산 중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