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르포] ③ '호루라기 분 사람' 리원량 생전 일터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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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원량 기리는 중국인들, 웨이보 계정서 끝없는 추모
우한 시민 "소수의 목소리라도 무조건 부정해선 안 돼" 중국 정부가 '열사'로 추서한 의사 리원량(李文亮).
그렇지만 정작 생전 그의 일터였던 병원에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리씨가 일하던 우한중심병원을 찾아갔다.
이곳은 안과 의사이던 리씨가 근무하던 곳이다.
우한중심병원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환자가 집중적으로 나온 화난(華南)수산물도매시장에서 1㎞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리씨를 비롯한 많은 우한중심병원 의료진이 당시 '원인 불명 폐렴'으로 불리던 코로나19에 노출되면서 희생이 특히 많았다.
리원량 의사 사후 그에게 국가와 사회를 위해 목숨을 잃은 인물에게 부여되는 최고 등급의 명예인 열사 칭호가 부여됐지만 우한중심병원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병원 1층 복도에 병원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 코너가 있었지만 리씨에 관한 전시물은 붙어 있지 않았다. 고인이 생전 일했던 3층 안과 외래 진료실 주변에서도 역시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우한의 한 교민은 "중국이 리원량 의사를 열사로 지정하기는 했지만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를 공식적으로 기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리원량은 당국에 의해 조명받지는 못한 열사인 듯했지만 그 덕분에 '제2의 사스'인 코로나19의 발생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게 된 우한 시민들은 그를 마음속 깊이 기리고 있었다. 우한중심병원에서 만난 리(李)씨는 "그는 우리의 모범"이라며 "그는 우리에게 닥칠 고난을 알고 우리에게 경고해 주었으니 우리 백성들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병원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던 한 장년 여성은 기자가 리원량 의사의 얘기를 꺼내자 자기 스마트폰을 열고 저장한 리원량 의사 부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리원량 의사 가족에게 닥친 일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일부러 이 사진을 인터넷에서 받아 저장해 놓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우한 시민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도 리원량 의사 추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리원량 의사가 생전에 쓰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건의 추모 글들이 쏟아진다.
그가 생전에 남긴 몇 개 안 되는 글에 댓글을 다는 형식으로 누리꾼들이 계속해서 추모 글을 남기고 있다.
누리꾼 '大毛****'는 "거기는 좋은가요? 아이들과 부인을 볼 수 있나요?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늘에서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라는 글을 남겼다.
'大頭*******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도 "리 선생님, 거기서 우리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당신 같은 사람을 있었다는 것이 나라의 행운입니다.
코로나19가 기본적으로 통제가 되고 있는데 당신이 이날까지 같이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라고 말했다.
리원량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이를 은폐·축소하려던 중국 당국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낸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작년 12월 30일 동창인 의사 7명이 같이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 대화방에서 화난시장에서 사스 환자들이 발생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고, 이후 이 사실은 인터넷에 급속히 전파돼 결국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중국 사회는 그는 코로나19의 존재를 알린 '호루라기를 분 사람'이라고 불렸다.
이후 리원량은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공안에 끌려가 '훈계서'에 서명을 하는 처벌을 받았다.
그 후 리원량은 코로나19에 걸려 지난 2월 6일 병상에서 34세를 일기로 숨지고 말았다.
리원량은 숨지기 직전 마지막 중국 언론 차이신(財新)과 인터뷰에서 "나는 하나의 건강한 사회에서는 한목소리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사망 직후 중국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급속히 고조됐다.
이에 중국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공안이 리원량의 훈계서를 철회하도록 하고 그를 열사로까지 추서했다. 우한의 회사원 탕(湯)모씨는 "소수의 목소리를 무조건 부정해서는 안 된다"며 "그래야만 미연에 화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우한 시민 "소수의 목소리라도 무조건 부정해선 안 돼" 중국 정부가 '열사'로 추서한 의사 리원량(李文亮).
그렇지만 정작 생전 그의 일터였던 병원에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리씨가 일하던 우한중심병원을 찾아갔다.
이곳은 안과 의사이던 리씨가 근무하던 곳이다.
우한중심병원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환자가 집중적으로 나온 화난(華南)수산물도매시장에서 1㎞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리씨를 비롯한 많은 우한중심병원 의료진이 당시 '원인 불명 폐렴'으로 불리던 코로나19에 노출되면서 희생이 특히 많았다.
리원량 의사 사후 그에게 국가와 사회를 위해 목숨을 잃은 인물에게 부여되는 최고 등급의 명예인 열사 칭호가 부여됐지만 우한중심병원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병원 1층 복도에 병원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 코너가 있었지만 리씨에 관한 전시물은 붙어 있지 않았다. 고인이 생전 일했던 3층 안과 외래 진료실 주변에서도 역시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우한의 한 교민은 "중국이 리원량 의사를 열사로 지정하기는 했지만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를 공식적으로 기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리원량은 당국에 의해 조명받지는 못한 열사인 듯했지만 그 덕분에 '제2의 사스'인 코로나19의 발생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게 된 우한 시민들은 그를 마음속 깊이 기리고 있었다. 우한중심병원에서 만난 리(李)씨는 "그는 우리의 모범"이라며 "그는 우리에게 닥칠 고난을 알고 우리에게 경고해 주었으니 우리 백성들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병원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던 한 장년 여성은 기자가 리원량 의사의 얘기를 꺼내자 자기 스마트폰을 열고 저장한 리원량 의사 부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리원량 의사 가족에게 닥친 일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일부러 이 사진을 인터넷에서 받아 저장해 놓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우한 시민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도 리원량 의사 추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리원량 의사가 생전에 쓰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건의 추모 글들이 쏟아진다.
그가 생전에 남긴 몇 개 안 되는 글에 댓글을 다는 형식으로 누리꾼들이 계속해서 추모 글을 남기고 있다.
누리꾼 '大毛****'는 "거기는 좋은가요? 아이들과 부인을 볼 수 있나요?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늘에서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라는 글을 남겼다.
'大頭*******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도 "리 선생님, 거기서 우리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당신 같은 사람을 있었다는 것이 나라의 행운입니다.
코로나19가 기본적으로 통제가 되고 있는데 당신이 이날까지 같이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라고 말했다.
리원량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이를 은폐·축소하려던 중국 당국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낸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작년 12월 30일 동창인 의사 7명이 같이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 대화방에서 화난시장에서 사스 환자들이 발생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고, 이후 이 사실은 인터넷에 급속히 전파돼 결국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중국 사회는 그는 코로나19의 존재를 알린 '호루라기를 분 사람'이라고 불렸다.
이후 리원량은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공안에 끌려가 '훈계서'에 서명을 하는 처벌을 받았다.
그 후 리원량은 코로나19에 걸려 지난 2월 6일 병상에서 34세를 일기로 숨지고 말았다.
리원량은 숨지기 직전 마지막 중국 언론 차이신(財新)과 인터뷰에서 "나는 하나의 건강한 사회에서는 한목소리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사망 직후 중국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급속히 고조됐다.
이에 중국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공안이 리원량의 훈계서를 철회하도록 하고 그를 열사로까지 추서했다. 우한의 회사원 탕(湯)모씨는 "소수의 목소리를 무조건 부정해서는 안 된다"며 "그래야만 미연에 화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