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논점과 관점] 케냐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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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논설위원2019년 노벨경제학상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에스테르 뒤플로 교수 부부가 수상했다. 글로벌 빈곤 퇴치를 위해 원조와 지원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 온 공로였다.
당시 필자는 뉴욕특파원으로, 작년 10월 스웨덴 왕립과학원 발표 직후 부리나케 보스턴으로 차를 몰았다. 수상기념 기자회견에서 기억에 남는 건 뒤플로 교수가 설명한 아프리카에서의 연구사례였다.뒤플로 교수는 2005~2007년 케냐에서 140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학생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방법을 찾았다. 교육이 빈곤 퇴치의 근본 해법이란 판단에서다. 당시 케냐에선 해외 원조를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데 써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연구 결과 학급당 학생 수를 82명에서 44명으로 낮춰도 성취도는 향상되지 않았다.
계약직이 더 낫다는 연구 결과
성취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방법은 따로 있었다. 공무원인 기존 교사 대신 계약직 교사를 투입하는 것이었다. 계약직 교사는 학생 성취도를 높여야 계약이 연장되지만, 일자리가 보장된 상당수 정규직 교사는 열심히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결근조차 잦았던 탓이다. 이는 공무원 조직의 비효율성을 드러내는 사례였다. 뒤플로 교수는 케냐 정부에 교사 임용법을 바꿔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성과가 좋을 경우 정식 임용할 것을 조언했다.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글을 봤다.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공공기관에서 6년간 일한 뒤 그만둔 이가 익명으로 쓴 글이었다. 그는 자신의 업무를 이렇게 요약했다. ‘음료 메뉴 취합해 주문하기, 필요한 간식 주문하기, 간식이 오면 공용공간에 예쁘게 배치하기, 회식 날짜 취합하기, 회사 앞 식당에서 장부에 선결제하기, 국장님 신문 가져다 드리기, 국장님 손님 오면 커피 타서 갖다 드리기, 매일 퇴근 전 다음날 일정을 국장님 방에 놓아 드리기, 팀원들이 버린 종이 파쇄기에 넣기, 지출결의서 총무팀에 갖다 놓기…’. 글쓴이는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바보가 되는 환경이었다. 공산주의를 체험하는 것 같았다”고 퇴사 이유를 적었다.물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도 많다.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퇴근도 못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책임감 하나로 방역 현장을 지키는 수많은 공무원이 있다.
인구감소 시대, 공무원 왜 늘리나
문재인 정부는 5년간 공무원 17만4000명을 증원하겠다는 공약을 실천 중이다. 지난 8월 기준 공무원 수는 112만4319명으로 문 정부 출범 이후 9만1988명 증가했다. 이것만 해도 이명박 정부 1만2100명, 박근혜 정부 4만1500명 등 보수정권 9년간 늘어난 5만3600명의 두 배에 육박한다. 내년에도 1만6140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과거 연간 2만 명 수준이던 공공기관의 정규직 채용도 문 정부 출범 이후 3만 명 이상으로 늘었다. 매년 이어지는 적자재정으로 국가채무가 850조원에 육박하고, 공공기관 부채도 올해 5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행정서비스를 받아야 할 국민은 감소하고 있다. 또 디지털 뉴딜로 지능형(AI) 정부가 구축되면 많은 업무가 자동화될 것이다. 게다가 공무원이 늘면 시장 효율은 저하된다. 재정지출이 증가해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킨다. 결국 민간 일자리는 감소하게 된다.지난 1일 발표된 공무원 충원 계획을 보고 불현듯 뒤플로 교수의 기자회견이 떠올랐다. 효율은 빈곤 퇴치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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