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청약 한다지만…당첨돼도 전세 3번 더 살아야 [집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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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까진 5~6년 이상…'공급지연' 보금자리 사례도정부가 주택 조기공급 효과를 내기 위해 6만 가구 규모의 사전청약 일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수요자들의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대부분 물량이 내년 연말이나 2022년에 몰려 있어서다. 당첨되더라도 정작 입주 시점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도 불안 요인이다.
내년 물량 절반은 연말께나 청약…서울은 5000가구
“‘영끌’ 말고 청약 기다리라”지만…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수도권 공공택지 사전청약 물량은 35개 택지 6만 가구 규모다. 이 가운데 3만 가구는 내년 하반기, 나머지 3만 가구는 2022년 입주자를 모집한다. 사전청약 물량이 실제 청약시장에 나오기까진 적어도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내년 배정된 물량 대부분이 연말에 쏠려 있기 때문에다. 내년 사전청약 3만 가구 가운데 7~8월 예정 물량은 6개 택지 4300가구에 그친다. 9~10월 물량도 남양주 왕숙2(1500가구) 등 7곳 5600가구 규모다. 연말인 11~12월에야 1만6300가구의 물량이 쏟아진다. 사전청약 물량이 1000가구를 넘는 택지도 이 시기에 쏠려 있다. 사실상 내년 4분기나 돼야 본격적인 사전청약이 이뤄지는 것이다.이마저도 서울은 2년 동안 4900가구에 불과하다. ‘8·4 부동산 대책’에서 발표된 노원구 태릉CC 등의 경우 아직 밑그림도 그려지지 않은 단계다. 대부분이 용산정비창 물량이다. 이곳에서만 3000가구가 2022년 하반기 사전청약을 받는다. 용산정비창 전체 공급 가구수(1만 가구)의 30% 수준이다. 이는 ‘공공주택 특별법’이 규정한 택지별 공공분양 물량의 전체를 사전청약으로 내놓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그만큼 조급하단 의미”라고 설명했다.당장 당첨된다고 해서 집이 빨리 지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전청약은 분양 예약의 개념에 불과해서다. 원래대로의 택지공급 공정이라면 착공 시기인 2023~2024년에나 청약을 받는다. 정부는 실수요자들의 매수심리를 일단 잠재우기 위해 일부 물량에 대해 본청약 전 사전청약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 등의 경우 내년 상반기에나 토지보상 공고가 진행될 예정이다. 2025년 입주조차 불확실한 셈이다. 2026년 준공을 가정하더라도 당첨자는 지금부터 세 차례의 전세를 더 살아야 한다. ‘임대차 3법’ 시행과 맞물려 서울 전셋값이 62주째 상승하는 상황에서 실수요자들의 반응은 떨떠름할 수밖에 없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청약 대기수요 증가로 수도권 중저가 주택 매매시장은 안정되겠지만 전세시장은 다소 불안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각 보금자리’ 재현 우려도
당첨은 됐지만 공사 일정이 밀릴 경우 당첨자에겐 ‘딜레마’가 될 수 있다. 주택 입주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매수할 수 없다. 주택을 갖게 되면 당첨 자격을 잃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 지어질지 모를 아파트 분양권을 마냥 들고 있을 수도 없다.사전청약이 처음 도입됐던 옛 보금자리주택에서 이 같은 일이 많이 벌어졌다. 토지보상도 하기 전에 사전청약을 받다 보니 사업 일정이 차일피일 밀려서다. LH에 따르면 2009~2010년 보금자리주택 사전청약에 당첨된 이들은 1만3398명 가운데 향후 본청약에서 실제 계약한 비율은 41%(5512명)에 불과했다. 본청약 일정이 지연되면서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아예 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당첨자는 사전청약 당시 가격으로 계약할 수 있지만 수년 동안 무주택이나 자동차 가액 등 입주 자격을 유지해야 한다. 2012년 12월 사전청약을 받은 하남 감일지구 B1블록(분양전환임대)의 경우 7년이 경과한 지난해 말에야 본청약이 이뤄졌다.정부는 이 같은 부작용을 막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흥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사전청약과 본청약 사이의 기간을 1~2년으로 최대한 줄이는 게 목표”라며 “이 때문에 교통계획 등 기본계획이 수립된 이후 사전청약 일정을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무주택자들 기다리던 내 집 마련 기회가 열리는 만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차질 없는 공급 추진과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