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넷플릭스 CEO "유능한 인재에겐 규칙 따윈 필요없다"

규칙 없음

리드 헤이스팅스·에린 마이어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468쪽│2만5000원

헤이스팅스가 말하는 넷플릭스 생태계
출퇴근 시간·출장 경비 등 스스로 정해
어떤 의사결정도 승인 받을 필요없어
한경DB
“규정을 없애니 관료주의적 풍조가 줄었고, 누가 언제 얼마 동안 자리를 비우는지 추적하는 데 들여야 했던 행정 비용도 사라졌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사진)는 《규칙 없음》에서 이같이 밝혔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인 넷플릭스는 세계 콘텐츠 산업계의 슈퍼스타다. 책 제목과 ‘지구상 가장 빠르고 유연한 기업의 비밀’이란 부제에 걸맞게 넷플릭스엔 ‘없는 규칙’이 많다. 출퇴근 시간, 휴가, 결재 승인, 출장 경비 등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 CEO로서 처음 쓴 이 책에서 넷플릭스가 왜 이런 조직문화를 택했는지 가감 없이 풀어낸다. 에린 마이어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 교수와 대담하는 형식으로 펴냈다.넷플릭스는 이른바 F&R 원칙으로 움직인다. F&R은 ‘자유와 책임(freedom and responsibility)’을 가리킨다. 직원이 팀에 손해를 끼치지 않고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노력한다. 출장을 갈 때 비행기 일등석을 탄다고 해도 말리지 않는다. 의사 결정도 실무 매니저에게 위임한다. 말단 직원이 CEO 사무실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이 모든 책임은 임직원 개개인이 떠안는다.

헤이스팅스는 해당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베스트 플레이어’와 ‘인재 밀도(talent density)’를 꼽는다. 내적 기준이 높은 ‘비범한 동료들’에겐 굳이 엄격한 규칙과 잣대를 들이밀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것이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뛰어난 능력과 협동심으로 무장한 인재들은 자유와 책임의 크기가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저자는 베스트 플레이어를 독수리에 비유한다. “독수리를 새장에 가두지 말라”며 “베스트 플레이어들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모든 걸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다.

넷플릭스는 비범한 동료들로 구성된다. 다양한 배경과 견해를 가진 비범한 동료들은 재능이 뛰어나고 창의력이 남다르며 중요한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긴밀히 협력한다. 재능이 뛰어난 베스트 플레이어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장의 조건은 호화스러운 사무실과 멋진 체육관, 혹은 공짜 스시 같은 게 아니다. 재능 있고 협동심 강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다.이런 인재들을 데려오기 위해 업계 최고 연봉을 보장한다. 넷플릭스엔 성과에 따른 보너스가 없다. 임직원이 보너스를 얻기 위해 실질적 성과와는 관계없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람들은 큰 보수를 보장받을 때 가장 창의적으로 변한다”며 “집안일과 생활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또 “보너스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관심이 쏠릴 때는 창의성이 떨어진다”며 “혁신적인 아이디어에는 성과에 따른 보너스가 아니라 두둑한 연봉이 좋다”고 덧붙인다.

인재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칼 같은’ 직원 관찰과 관리가 중요하다. 저자는 “로비 안내요원부터 고위 임원진에 이르기까지 해당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올리면서도 협동 능력이 탁월한 직원들로 넷플릭스를 채우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며 “이는 넷플릭스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강조한다.

‘키퍼 테스트’는 인재 밀도 관리를 위한 넷플릭스만의 수단이다. 키퍼 테스트는 조직 관리자의 입장에서 ‘팀원 중 한 사람이 내일 그만두겠다고 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겠는가, 아니면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사직서를 수리하겠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저자는 “후자라면 지금 당장 그에게 퇴직금을 주고 스타 플레이어를 찾아야 한다”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누구를 내보낼 때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회사 내 조직은 가족이 아니라 업무를 위해 결성된 팀이기 때문이다.“해외 지사 임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선 각국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미국 기업문화와 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를 원만하게 융합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해야 하고,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말하기 전에 듣고, 가르치기 전에 배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 최고 대우’ ‘솔직한 피드백’ 등의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 든다. 이 책은 넷플릭스의 자유로운 기업문화 뒤엔 “최고가 아니면 버린다”는 경영철학이 있다는 현실을 일깨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