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세기의 라이벌 브로드컴 vs 퀄컴

김지욱의 세계 주식 여행 (6)
미국에서 대표적인 통신 및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업체로는 두 회사가 있다. 바로 브로드컴과 퀄컴이다. 두 회사는 올해 들어서 매출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주된 이유는 중국 시장에서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브로드컴 매출의 8%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화웨이 제재로 인해 주력인 5G 칩과 네트워크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됐다. 실제로 1분기에 관련 매출이 주춤하면서 퀄컴에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2분기에 중국 매출을 애플 삼성전자 등이 메꿔주면서 팹리스 1위 자리를 재수성했다.

지금은 브로드컴과 퀄컴이 나스닥에서 경쟁 중이다. 하지만 2017년 브로드컴은 애플로부터 AP칩 독립을 선언하면서 어려움에 처했던 퀄컴에 파격적인 인수합병(M&A)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그때 만약 퀄컴이 브로드컴의 M&A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둘이 합쳐졌다면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다음에 페이스북이 아니라 브로드컴&퀄컴 합병회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브로드컴은 위성항법장치(GPS)와 블루투스에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퀄컴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반 이동통신 칩의 절대 강자다. 퀄컴이 당시 인수한 NXP도 자동차용 반도체의 최대 강자다. 둘의 합병이 현실이 됐다면 현존하는 모든 칩을 아우르는 거대 공룡이 탄생할 수 있었다.

브로드컴은 퀄컴 인수 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감한 동종업계 M&A를 통해 급격하게 성장했다. 2019년에는 퀄컴 인수 실패 후 세계 최대 보안회사인 시만텍을 거금을 들여 인수하고 기업가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M&A 효과는 주가로 그대로 증명되고 있다. 2011년 브로드컴은 주당 21달러로 그냥 꽤 괜찮은 팹리스 회사 중 하나였다. 현재 주가는 362달러(8일 기준)로 9년간 1620% 올랐다. 국내에서도 M&A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보수적인 시각이 더 크다. 한국 기업도 M&A를 통해 성장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회사가 나오길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