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코로나와 무뎌진 핀셋

이관우 레저스포츠산업부장
“전시회, 지하철보다 안전합니다.”

전시산업진흥회는 이런 문구가 담긴 팸플릿을 얼마 전 홈페이지에 띄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부로선 ‘발칙’하기 이를 데 없는 직격 도발이다. 왜 이런 도발을 감행했을까.“너무 억울해서요.” 업계 관계자의 답변은 여러 생각거리를 던진다.

다수가 모이는 실내 행사라면 감염 리스크는 현실 아닐까. 업계는 펄쩍 뛴다. 다수, 실내라는 교조적(敎條的) 기준만으로 고위험집합시설을 가리는 좁은 시각이 ‘절규’를 낳는다는 주장이다. 신원이 특정된, 안전한 다수가 사회적 거리를 지켜 말없이 관람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중 실내 행사도 방역 나름

팩트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이런 ‘뉴노멀’로 전환한 전시업계의 감염 전파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된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대형 전시회만 최소 100개가 열렸다. 관람객이 족히 100만 명에 이른다. 그래도 감염률은 ‘제로(0)’다. 우연한 성과일까. 진흥회 측은 “멀티 방역 시스템을 가동한 덕분”이라고 했다.국제제약화장품위크 전시회가 한 예다. 581개 업체가 참가해 2000여 개 부스 규모로 열린 이 행사 하나에 적용한 방역필터는 열감지 센서, 자동 분무 소독, 비말 차단막, 입·출구 분리, 관람 위치 이격 등 13가지나 된다. 3만여 명이 다녀갔는데도 ‘후환’이 없다. 지하철, 백화점 등 ‘필수 경제활동 시설’보다 안전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행사와 달리 특정 다수가 주도하는 ‘B2B(기업 간 거래)’ 행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두 이해관계가 같은 처지라 방역수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려 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코로나19가 재확산할 기미를 보이자 최근 전시 행사를 금지했다. 4차 추경에선 피해 지원 대상에서도 뺐다. ‘행사 금지’로 일이 사라진 업계는 오히려 3차 추경 때 받은 지원금을 반납해야 할 처지다.

핀셋 지원, 규제부터 제대로

업계는 여전히 궁금해한다. 공장을 돌리고, 물품을 판매하며, 일터로 출근하는 필수 경제활동과 비즈니스형 전시산업의 속성이 왜 다른지다.정부는 언제부턴가 ‘핀셋’이란 말을 즐겨 쓴다. 규제도 지원도 모두 정밀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핀셋은 ‘공정함’을 위해선 좋은 방향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동네 카페는 되고 프랜차이즈 카페는 안 되며 유흥주점은 되고 단란주점은 안 되는 아리송한 기준이라면, 그 결과가 불안전한 10명보다 안전한 100명을 규제하는 것이라면, 정부의 핀셋은 이미 기준부터 무뎌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멀쩡한 이들의 팔을 꺾어 엉뚱한 이들에게 퍼주는 게 핀셋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기준이라고 항변하면 ‘힘들지 않은 곳은 없다’며 눈을 부라리는 게 정부다. 통신비 2만원을 뿌리는 헬리콥터 지원 대신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한 곳’에 집중 지원하는 게 진짜 핀셋 아니냐고 하면 ‘긴급지원은 속도가 중요하다’며 들은 체 만 체다.

그러는 사이 시장 규모 3조5000억원, 종사자 4만여 명에 달하는 ‘황금알’ 전시산업은 고사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이들 업체의 4분의 3이 종업원 수 20인 미만인 중소상공인이다.전시는 1년에 딱 한 번 치르는 행사가 많다. ‘한철 농사’로도 불린다. 절박함이 다른 게 그래서다. 한 전시물 설치업체 대표는 “억울한 게 체한 듯하더니 우울증으로 번졌다”고 했다. 대체 무엇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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