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미래형 인간

진옥동 < 신한은행장 okjean@shinhan.com >
기획서 작성은 항상 부담이 가는 일이다. 기획 업무를 하다가 스트레스가 너무 쌓인 나머지, 바쁘게 지내는 영업점으로 보내달라고 조르던 기억도 떠오른다. 현상을 분석한 뒤 미래를 예측하고 대안을 담아야 하는데, 좀처럼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어설프게 밑천이 드러날까 봐 걱정돼 현상 분석에 공을 들이다 보니 두루뭉술한 결론으로 서둘러 보고서를 마무리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부장님의 날카로운 질책이 뒤따랐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야?” “대안이 뭔데?”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며 ‘역시 이 업무는 무리야’라는 자괴감이 들곤 했다.

요즘 세련된 디자인의 두꺼운 보고서를 보면 ‘이 많은 걸 작성하는 데 얼마나 고생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적재적소에 일러스트를 가미한 직원들의 센스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치 있는 기획이란 화려한 비주얼과 방대한 분량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보다 ‘미래의 예측’을 얼마나 많이 담고 있느냐로 결정된다.트렌드와 현상 분석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이렇게 될 것 같으니 이런 방향에서 준비가 필요합니다” “두 가지 대안이 있는데, 저는 1안을 추천합니다”와 같은 예측에 더 정성을 쏟아야 한다. 설령 그것이 틀릴지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습관을 기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평소 대화의 문장을 예측형으로 끝내는 습관을 들여보자. 예를 들어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구름이 많이 끼었네, 비가 올 것 같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많이 들리는 걸 보니 이제 곧 가을이 오려나 보다” 등 현재 나타나는 현상이 다음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단순한 관찰에 그치지 않고 그다음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면 ‘미래형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회사 다녀올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 하던 아침 인사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을 바꿔놨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직장과 학교는 다름 아닌 ‘집’이 됐다. 이런 현실 속, 예측과 상상은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고 일상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마치 ‘은행에 꼭 가야 할까?’라는 생각에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가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한 장의 기획서에 담겨야 할 것은 ‘과거’ 또는 ‘현상’보다는 ‘미래’가 돼야 한다. 앞날을 상상하는 준비와 설렘이 있다면 일상이 더 충만해질 것이며, 이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긴 기획이 희망찬 내일을 이끌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