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빌렸으니 이자 더 내라?"…시중은행들의 대출 꼼수

5000만원 미만 빌리면
금리 연 0.3%포인트 올라
2000만원 미만 추가 인상

이자 수익 감소 따른 결정
부담 소비자에게 넘기는 꼴
"대출 증가 부추긴다" 비판도
사진=연합뉴스
오는 10월 시중은행 직장인대출 만기를 앞두고 있는 직장인 김모씨(38)는 최근 대출 연장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대출 금액을 원래 계획보다 줄여보려고 했더니 대출 금리가 더 높게 나온 것이다. 김씨는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대출금 5000만원을 기준으로 금액이 적을수록 금리는 높아졌다"며 "많이 빌릴수록 금리가 낮아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 금액에 따라 금리를 다르게 책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금액 감소에 따른 수익을 보존하기 위한 취지인데 이자 부담을 소비자에게 넘긴다는 지적이 나온다.1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A은행 '주거래 직장인대출'은 대출금액에 따라 연 0.3%포인트의 금리 차이를 두고 있다. 대출금액 5000만원을 기준으로 최대 2억원까지는 금리가 같지만, 이보다 적으면 구간에 따라 금리가 0.3%포인트씩 높아지는 것이다.

가령 신용등급 1등급 직장인이 5000만원을 빌릴 때 연 2.0%의 금리를 받게 된다면 동일한 조건에서 금액이 2000만원~4999만원으로 낮아지면 금리는 연 2.3%로 높아진다. 금액이 2000만원 미만으로 내려갈 경우에는 금리는 연 2.6%가 된다.

A은행만 대출금액에 따라 금리를 차등 적용하는 게 아니다. 모든 시중은행이 이같은 방식으로 대출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금액에 따라 적게는 0.1%포인트에서 많게는 0.3%포인트가 차이가 난다. 은행들은 대외비라는 이유로 금리 차이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문제는 은행이 공지하기 전에는 소비자들이 이를 알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을 포함한 시중은행들은 상품설명서, 기본약관, 세부설명서, 서비스 이용약관 등에 대출금액에 따른 금리 차이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금리 산출은 은행의 고유 권한"이라며 "법적으로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금융위원회 한 관계자는 "대출금액에 따라 금리가 차이 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대출금액이 커질 수록 상환에 대한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에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라고 했다.

은행들은 업무 원가를 감안할 때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4대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도, 많이 사면 깎아주는 게 당연한 시장 원리다. 과거부터 있어왔다"며 "대출 실행에 대한 노동은 동일한데 금액에 따른 수익이 달라지니, 업무 원가를 감안해 금리 차이를 두는 것"이라 말했다.

신용대출 증가세 부추겨…서민 부담 낮춰야

은행들의 이 같은 방침이 신용대출 급증을 부추긴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 불필요한 금액을 추가로 대출받으면서 신용대출 증가세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8월 말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124조2747억원으로 올 들어서만 10조2935억원 급증했다. 이달 들어서도 10일까지 1조1425억원 늘었다.

정치권은 구체적인 요건을 확인해 필요하면 서민 부담을 낮추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무위 소속 의원 한 보좌관은 "관련 내용을 확인했더니 국민 정서와 반대되는 내용이 있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제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