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반도체 어디서도 못 산다"…존폐 기로 선 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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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수급길 차단' 화웨이, 시장 퇴출 위기중국의 최대 통신장비·스마트폰 제조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전면적인 반도체 제재가 15일(현지시간) 시작된다.
국내 기업, 단기적 실적 하락 불가피
다만 장기적으론 기회될수도
중국이 강경 대응 나설 지도 관심
반도체의 수급 길을 원천 차단해 화웨이를 사실상 존폐 기로에 서게 할 만큼 초강력 제재인만큼,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커다란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날부터 미국 장비와 소프트웨어(SW), 설계 등을 사용해 생산하는 모든 반도체에 대해 사전 승인 없이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업계는 그간 트럼프 정부의 대 중국 기조를 볼 때 미국의 '반 화웨이 전선'이 워낙 뚜렷한 상황이라 반도체 판매 관련 미국의 승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화웨이로의 수출 길을 막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의견이 많다.
화웨이로썬 당장 발등에 불이다. 향후 스마트폰을 비롯해 이동통신 기지국, 서버, 컴퓨터, TV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반도체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TF인터내셔널증권은 "최악의 경우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화웨이는 제재 발효 전까지 최대한 재고를 축적하기 위해 최근 협력 업체들을 통해 주문량을 급격히 늘렸다. 미국 정부의 제재가 풀릴 때까지 최대한 비축한 재고 부품으로 버틴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화웨이가 미국 제재 전까지 5세대(5G) 통신 스마트폰 칩, 와이파이 칩, 이미지 구동 칩 등을 적극적으로 비축하고 있다"고 했고, 자유시보는 "화웨이는 회당 약 2억8300만원을 지불하면서 전용 화물기를 띄우며 TSMC 등으로부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웨이는 비축해놓은 반도체 부품의 규모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약 3개월~반 년 후인 내년 초부터는 화웨이의 비축 부품이 동날 것이라는 관측과 최대 2년 치의 핵심 반도체 부품을 비축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다만 비축량과 무관하게 세계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화웨이의 추락은 불가피해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앞으로 첨단 반도체를 수급할 수 없다는 건 앞으로 화웨이 제품의 시장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내년 화웨이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4.3% 수준으로 폭락할 것으로 봤다. 올해 15.1%로 예상되는 화웨이의 점유율이 1년 만에 10%포인트 이상이 떨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제재에 따라 그간 화웨이를 고객사로 둔 TSMC, 미디어텍, 소니 등 대만과 일본 반도체 부품 공급 업체 뿐 아니라 D램과 낸드플래시 등을 수출했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도 불똥이 튀게 됐다.화웨이에 대한 수출과 현지공장 공급 길이 막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상무부에 판매 승인을 요청했지만 승인 가능성은 희박하다. 양사의 매출 중 화웨이 비중은 각각 3%와 11%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는 수출 금지 조치가 1년간 이어질 경우 연간 10조원 가량의 매출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반도체 수출량이 약 112조(939억3000만달러)임을 고려할 때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단기적인 수출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메모리 반도체가 맞춤 제품이 아닌 표준형 범용 제품에 속하는 만큼 대체 고객사를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화웨이의 빈자리를 오포, 비보, 샤오미 등 다른 중국 기업들이 메우게 된다면, 이들에 납품하는 국내 업체가 다시끔 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화웨이의 입지 축소에 따라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외 타 분야에서의 반사 이익도 기대된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 매출 중 10% 이상을 화웨이가 차지하고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삼성전자는 통신장비 시장 등 반도체 외의 분야에서 화웨이의 부진에 따른 점유율 반등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는 내심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가 완화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다만 고강도 제재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만약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중국에 유화책을 펼치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바이든의 대중관이 바뀌었다. 누가 당선되든 미국의 대중 정책은 더 강경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는 미국이 화웨이를 대상으로 한 고강도 제재를 시작한 이유가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5G 인프라 구축을 화웨이가 주도하는 중국에 내줄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우선 내수위주의 자립경제를 의미하는 '쌍순환'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최근 화웨이에 대한 제재 뿐만 아니라 이날 미국의 전방위적인 경제 압박을 내수시장으로 돌파하겠단 의지를 내비쳤다.중국이 강경 방향으로 태도를 선회할 것인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미국이 국가 안보를 핑계로 국가 역량을 남용해 해외 기업을 아무 이유 없이 탄압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중국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중국 기업의 권익과 권리를 보호할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